제주올레 5일째 18코스, 아름다운 모습 뒤에 감추어진 아프도록 시린 제주

2021. 5. 3 (월)
다섯째 날, 18코스 19.7km. 제주시 관덕정~조천 만세동산

맑은 하늘 해오름의 아우라가 성산일출봉 너머에 붉게 번져 오른다. 새벽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건드리며, 하루의 획을 긋듯 긴 여운의 연기를 남긴다.

조선시대 양반네들에겐 제주도는 좌천과 퇴출(유배)의 땅이었다. "이 곳의 풍토와 인물은 아직 혼돈 상태가 깨쳐지지 않았으니, 그 우둔하고 무지함이 저 일본 북해도의 야만인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추사 김정희가 제주를 묘사한 말이다. 18코스 조천에 있는 연북정(戀北亭)은 '북쪽의 서울 임금을 사모하는 정자'로 제주도를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그런 피하고픈 땅이었다. 오현단의 오현은 김정, 김상헌, 정온, 송인수, 송시열을 말한다. 이중 김상헌은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로 알려진 병자호란 당시 청으로 끌려가면서 부른 노래다. 송시열은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다 제주로 유배되었다. 오현단에 있는 '증주벽립(曾朱壁立)'은 본래 성균관 북쪽 벼랑에 새겨진 송시열의 글씨를 탁본하여 다시 새긴 것이라 한다. 오현을 다섯 성현이라고 하는데 논란은 많다고 한다.



18, 19코스에는 특히 4.3유적지가 많이 있다. 제주주정공장 옛터는 4.3사건 당시 임시 수용소였고, 곤을동은 마을전체가 몰살해 흔적만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제주 올레 구간중 19코스가 가장 가슴 아픈 구간이며, 다음으로 18코스다. 차를 타고 다니면 결코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비극의 현장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면 역사이래 늘 괄호 밖이었던 민중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닭므르는 닭이 흙을 파는 모양이라고 하는데, 그닥...제주의 해안길을 상징하는 용암이 식은 형상들은 지금도 뜨거운 용암에 꿈틀거리며 방금 식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동해와 남해, 서해에선 결코 볼 수 없는 해안선이다. 동해가 깨끗한 해변이라면, 서해는 갯펄로 질척이는 그런 뻘밭이다. 남해는 그 중간 정도. 제주의 해안선은 역동하며 살아있다. 뜨거운 용암이 태초의 땅을 혼돈에서 생명으로 바꾸는 저마다의 검은 바위의 뜨거운 절규가, 차가운 파도와 만나면서 순간적으로 빚은 저마다의 자태를 보노라면 살아있는 뜨거운 생명을 보는 느낌이다.






18코스에는 제주 올레길 중 가장 많은 용천수를 볼 수 있는 용천수 박물관이다. 용천수를 식수로, 목욕탕으로, 빨래터로 활용하며 마을주민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는 포털이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어 길손들의 발을 적시는 용도에 불과하지만.

제주도에서 거의 유일한 검은 모래 해수욕장이다. 제주의 여타 해수욕장은 전복, 소라 등 패류가 오랜 세월 파쇄되었지만, 삼양 해수욕장은 현무암이 패류보다 더 오래된 기간동안 갈려 만들어졌다. 해수욕장 크기가 크지 않아 검은 모래란 특징 외에는 없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모여든다.
* 참고문헌 : 이영권(2008), 제주역사 기행, 한겨레출판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덧없이 사라져 버릴 환영과 같은 삶으로부터 어떤 참되고 영원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 무한한 만유 속에서 나의 유한한 실존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톨스토이, <톨스토이 고백록> 중
올레길은 사색의 길이다. 그런 점에서 시대의 지성이었던 톨스토이의 고백록처럼, 인간은 달나라에 발을 디디는 문명과 동시다발적으로 전세계에 정보를 누구나 발신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를 가졌지만, 여전히 인간의 정신은 제자리 걸음이다. 아니 퇴보하는 느낌이다. 기술은 미래를, 정신은 고전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다. 그런 점에서 톨스토이의 고백록은 정신이란 여정을 탐구하는 필독서로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