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008.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선택과 포기

풀꽃처럼 2023. 8. 1. 09:07

선택과 집중은 경영전략가 마이클포터가 주장한 개념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한곳에 집중적으로 투입해 효율의 극대화를 꾀한다. 임진왜란 당시 전투선이 13척밖에 남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은 수백 척의 왜군과 맞서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현재 해남에서 진도로 들어가는 울돌목을 13척으로 수백 척과 맞서야 할 최적의 장소로 선택한다. 물살의 거세 회오리치는 바다는 일본의 배들을 인간의 힘으로는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이순신 장군이 탄 전투선은 홀로 일본 전투선을 유인하고 울돌목이란 장소를 활용해 일본해군을 대파한다. 명량해전은 선택과 집중의 사례다.

선택과 집중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선택과 포기다. 하나를 선택해 집중한다는 건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상황은 희박한 확률이다. 도시와 시골의 삶 중 어디를 선택하느냐는 것도 선택과 포기의 영역이다. 모든 것이 편리하게 갖춰진 도시는 삭막하고, 불편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여유로운 삶은 시골이다.

젊어서는 야망과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만 보며 달린다. 아직 손에 거머쥔 것이 없는 인간이 단기간에 올라서기 위한 삶은 도시가 유리하다. 시골보다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대신에 산과 하늘을 바라볼 여유는 없다. 시골은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시보다는 소외되어 있다. 산골에 있으면 도시보다 돈을 쓸 기회는 훨씬 적다. 가까운 편의점은 차를 타고 20분은 족히 나가야 하니 군것질이나 소비를 위한 소비행위를 불러일으키는 환경이 안된다.

산골은 새벽에 창을 열면 각양각색의 새소리와 변화무쌍한 하늘, 폐의 모세혈관까지 유입되는 신선한 공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아침저녁으로 손바닥 만한 텃밭에 물을 주고, 상추며 깻잎, 토마토 등 신선한 유기농 채소들로 밥상을 채운다. 소득은 도시에 비하면 불규칙적이고, 소규모다. 그런 점에서 시골은 청년보다는 중장년의 삶에 적합한 곳이다. 물론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소박한 삶을 통한 행복을 좇는 청춘들도 있다.

도시는 위로 올라가려는 수직적 체계다. 고급 고층 아파트처럼 보다 좋은 위치로 올라가려는 구조다. 시골은 이웃과 함께하는 수평적 체계다. 조그마한 마을 단위로 얼굴을 수시로 마주하는 공동체다. 도시처럼 안면몰수 할 수 없는 수평적 사회다. 저마다 자급농을 통해 자급자족하며 산다. 도시처럼 화려한 삶과 비참한 삶의 극단은 없다. 대부분 고만고만하게 먹고사는 사회다.

화개천에 자리한 커피맛이 좋은 카페에서

시골은 도시처럼 정규직이란 개념이 희박하다. 내가 머무는 산골에서 꿀보직은 지리산 역사관과 작은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람이다. 방문하는 사람이 극히 적으니 개인이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이 풍성하다. 임금은 적지만 만족도는 높다. 수시로 군과 면에서 모집하는 시간제 일거리들도 있다. 여름이면 물놀이 안전요원과 주차요원, 축제 때 필요한 임시직 등 직장은 없지만 직업은 꾸준하다. 일정한 기간만 노동하면 나머지는 다시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인생은 짧다. 도시의 수직적이고 편리한 사회를 선택할지 시골의 수평적이고 여유 있는 삶을 선택할지는 개인이 결정한다. 행복을 우선시한다면 시골이고, 성취감과 명예를 우선시한다면 도시가 가깝다. 어디를 선택하든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하나를 포기하기 어렵다면 반농반X 삶도 선택지일 수 있다. 반농반X란, 먹거리를 자체 해결하고, 해야 할 일(X)을 함께 추구하는 삶이다. 도시처럼 직장은 없지만 시골에도 일거리(X)는 언제든지 있다. 고령자의 일손까지도 필요할 만큼 초고령사회에 이르렀다. 안정된 직장은 없지만 일거리(X)를 모으면 경제적 생활비는 마련할 수 있다. 4도 3촌처럼 4일은 도시에서 3일은 농촌에서 생활하면 된다. 

장마끝난 후 노고단에 올라 운무에 쌓인 구례를 내려본다

첫번째 산을 내려온 은퇴한 중장년의 경우 한 달의 반은 도시에서 나머지 절반은 시골에서 살 수도 있다. 은퇴(retirement)는 타이어(tire)를 갈아 끼우는(re)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retirement는 남은 인생을 다시(re) 점화(fire)한다는 refirement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어로 퇴직은 투이씨우(退休)다. 물러나 나무 곁에서 쉰다는 의미다. 한국은 OCED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국가라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분명한 점은 시골이 도시보다 행복에 이르는 확률이 높다. 자연은 악인이든 선인이든 모두를 품는다. 그 사람의 지위나 명예, 소득, 성별, 얼굴, 몸매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생물의 하나로 품어준다. 도시의 날 선 환경을 무디게 만드는 힘이 시골에는 있다. 연어가 자기의 근원을 잊지 않고 돌아오는 것처럼 시골은 도시의 삶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티끌 진(塵)은 사슴(鹿) 무리가 뛰면서 생기는 먼지(土)의 크기가 나노(10의 -9승)일 만큼 작다. 그러나 자연은 티끌일 망정 하나의 개체로 인정한다. 그 하나의 티끌들이 모여 지구가 되었고, 우주를 형성했다. 오늘 새벽도 신선한 공기를 전해주는 자연이 고맙다. 산에서 내려오는 지하수로 손바닥 텃밭과 꽃들에게 물을 준다. 그들은 나에게 양식이 되고, 나는 그 영양분으로 살아간다. 호흡이 다하면 나도 하나의 티끌이 되어 텃밭의 영양분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