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산골에선 가을이라 쓰고 겨울이라 읽는다
산정상부터 가을의 전령사인 단풍이 편지를 위로부터 아래로 써 내려간다. 태양도 점점 늦잠을 자고, 오후 4시가 되면 산능선으로 내려간다. 햇살은 뜨거운 여름에는 마당에만 머물다가 가을이 되면서 방안 가득 허락도 없이 들어온다. 이젠 따사로운 햇살이 그리워지는 시간이 되었다.

태양은 그대로인데 지구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면서 북반구와 태양사이의 거리가 멀어진 만큼 추위가 들어선다. 반대로 남반구는 태양과의 거리가 가까워져 여름이 된다. 지구가 태양주위를 365일 공전과 매일 자전을 하고, 동시에 위아래로 움직이기에 그 속에 사는 호모 사피엔스는 사계절을 맛본다. 사피엔스의 존재가 워낙 자그마하기에 우주를 날아가는 지구를 느끼지 못한다. 지구라는 행성에 얹혀살면서 그 고마움을 알지 못한 채 오직 이기심만 주장하는 오만한 생물이다.
산골에서 맞는 첫가을은 태양과 지구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도시에 있으면 그저 회색빛 건물사이에서 자연을 관찰할 기회가 없을텐데 산골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몸으로 체득한다. 가을과 겨울을 지내기 위해 나무 1톤을 구입했다. 이웃집에서 도끼를 빌려 나무를 내리친다. 내가 내리치려는 곳과 실제 도끼날이 꽂히는 편차가 너무 크다. 몇 번의 도끼질에도 온몸이 데워지고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나무대신 땅을 찍기도 하고, 꽂힌 도끼날이 빠지지 않아 그대로 내려치는 수고로움도 수없이 한다.

역시나 초보자의 도끼질은 얼마못가 도끼 머리부분의 이음새가 부러지고 만다. 숙련자였다면 순간 가속력과 부드럽고 정확한 동작으로 쉽게 장작을 쪼개었을 것이다. 도끼날이 뒹굴면서 초보자의 산골적응기는 허둥거리고 있다. 인터넷에서 쐐기도끼를 10만 원에 주문한다. 원을 그리는 내려치는 도끼는 힘도 들고, 원하는 지점에 도끼날을 맞히는 것도 어렵다. 쐐기도끼는 수직으로 움직이기에 힘도 덜 들고 쉽게 쪼개진다. 산골도 소비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싼 장비의 힘이다.
캠핑장에서 불멍을 하는 즐거움을 산골에서는 이틀마다 누린다. 실내온도가 23도 정도면 아궁이에 장작을 넣지 않아도 견딜만하다. 22도가 되면 견딜 수 없는 방안 냉기로 인해 장작을 아궁이에 넣는다. 초보 산골꾼은 불을 피우는 것도 어려운 작업이다. 작은 불은 계속해서 꺼지고, 나무의 상태에 따라서 불도 반응하는 방법이 다르다. 불은 쉽게 붙는다는 선입견에 뒤통수를 맞는다. 이래저래 도시 촌놈은 10분 이내면 끝낼 아궁이불도 1시간 넘게 걸린다.

온몸에 불냄새를 묻혀야 방으로 들어온다. 해가 넘어갈 때 시작한 아궁이 불피우기는 깜깜한 저녁이 되어서야 마무리된다. 방에 들어와 방바닥에 손을 대면 처음에는 차갑다가 점점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달구어진 온돌이 밤이 깊어갈수록 뜨거운 불기운이 뼛속 깊숙이 파고든다. 불멍보다는 불맛이 더 좋은 산골의 아궁이 방이다. 기름보일러 겸용이지만 장작불처럼 온 몸속으로 파고드는 행복감은 체험하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 어릴 적 연탄 아궁이와는 또 다른 맛이다.
자칫 단조로운 산골의 일상이지만 가을이 되면서 장작불을 지피는 즐거움이 추가로 장착되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지긋지긋하던 벌레로부터도 해방되었다. 철 따라 피어나는 화단의 꽃들과 함께 산골의 가을은 또 다른 그림으로 지구별 순례자를 맞이한다. 인생이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기쁨이 불꽃처럼 피어나는 시간이다. 산골 초보자의 가을은 또 이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