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7일째 20코스, 지친 다리는 낯선 바다에서 신선한 휴식을 취하고
2021. 5. 5(수)
20코스 17.6km 김녕 서포구~김녕 해수욕장~월정리 해수욕장~세화 해수욕장~제주 해녀박물관


어제 장대비와 거센 바람이 한바탕 하늘과 바다를 휘저은 후의 깨끗한 풍광은, 인간에게 축복의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18,19코스가 제주의 아픈 기억을 따라온 길이었다면, 20코스는 그 아픔을 잊기라도 하는 듯 전구간이 아름다운 제주의 특색있는 자연을 선사한다.



출발지에서 이어지는 김녕 벽화마을 감상과 포구의 정갈한 모습들은 지친 여행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김녕 해수욕장에서 장소를 달리하고,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른 곳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바다의 색깔과 공기의 느낌, 하늘의 색감도 다르다. 오늘 김녕 바다에선 아름다운 풍광에 선물 꾸러미를 받은 느낌이다.

한라산의 용암이 흘러흘러 바다에 도착할 즈음, 앞 용암에 밀려 뒷 용암이 뒤를 계속 밀다가, 그대로 바닷물에 굳어버린 겹겹이 밀린 용암 형태가, 뜨거웠던 화산섬 제주도의 탄생을 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제주 해안의 용암이 식어버린 형태에서 제주 탄생의 현장을 관찰 할 수 있다.



월정리 해수욕장 인근의 카페 골목. 바닷가에서 조금 비껴선 곳에 점점이 모여있는 카페는 예쁜 사진을 기대하는 사람에겐 최적의 장소다.


월정리(月汀里)는 마을의 모양이 반달 같고 바닷가에 접해 있다는 뜻으로, 또는 '달이 뜨는 바닷가'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상가 간판에는 '달이 머무르는 마을'로 되어 있었는데 이 표현이 더 운치있게 다가온다.

1623년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1637년 제주로 이송, 1641년 67세에 제주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임금이 된 후 명과 청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쳤지만, 1623년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서인세력에 의해 인조에게 왕위를 빼았겼다. 인조는 친명배금 정책을 선택했고, 병자호란(1636년) 임금이 직접 항복하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다. 만약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다면, 위기를 극복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씹으며, 현재 미중 양강이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는 명과 청을 사이에 둔 조선의 상황과 오버랩이 되는구나.


파의 꽃말은 인내라고 하는데, 파들이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땅위로 폭죽처럼 꽃을 터트리며 만개했다.
상식파괴자처럼 생각하기 위해서는 낯설고 신선한 경험이 필요하다. 상상을 자아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각 시스템을 전에 본 적 없는 사람, 장소, 사물과 대면시키는 것이다.
그레고리번스, <상식 파괴자> 中
여행은 낯선 곳에 시간과 공간을 들여 놓음으로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는 바이러스다. 뇌는 익숙한 것에 젖어들어 시간이 흐르면서 굳어간다.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기억이 상실되어도 집에 반드시 찾아가는 것은, 뇌의 익숙한 패턴에 각인된 기억 덕분이다. 여행은 뇌를 피곤하게 하지만, 뇌를 단련하는 강제된 훈련이다.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 며칠간은 근육이 아프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근육이 찢어져 더 단단해 지는 것처럼, 우리의 뇌 근육도 여행을 통해 단련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