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038.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강소(强小)마을, 악양 매계마을 산골음악회에서 지역소멸 돌파구를 엿보다

풀꽃처럼 2024. 9. 3. 11:58

하동은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곳의 이상향인 청학동(靑鶴洞)의 본향이다. 사람들은 현실의 갈등과 고통에서 벗어난 푸른학이 머무는 피안의 세계를 꿈꾼다. 청학동은 피안이 아닌 현세에서 만날 수 있는 이상형, 유토피아(Utopia),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하동에는 3곳의 청학동(화개, 악양, 청암)이 있다. 한국에는 하동 청학동외에도 경북 상주의 오복동(五福洞), 대전의 식장산(食藏山), 제주 인근 이어도(離於島), 함경도의 태평동(太平洞) 등이 있다.
 
청학동은 흉년과 전쟁, 질병이 없는 땅으로 살아가기 가장 좋은 땅이다. 청학동의 대표적인 장소는 화개 청학동이다. 신라시대의 천재 최치원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최치원은 신라시대 당나라 유학 중 장원급제했다. ‘황소의 난’을 제압하는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당나라 전역에 이름을 떨치고 화려하게 신라로 귀국했다. 신라는 골품제 사회로 그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관직은 6두품이다. 6두품이 현재 차관급 정도라고 본다면 그의 실력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지리산에 들어갔다고 전해지는 곳의 한 곳이 화개면이다. 최치원은 “동쪽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東國花開洞 壺中別天地)”라는 시를 남겼다. 얇고 긴 주둥이를 지나야 만날 수 있는 별천지다. 하동군의 브랜드도 ‘별천지 하동’이다.
 
악양에도 청학동이 있는데 매계마을이다. 악양은 “거지가 악양에 들어와서 얻어먹으면 3년을 먹어도 세 집이 남는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너른 들판과 1천미터 봉우리들이 병풍을 친 곳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청학동은 지금의 매계로 근래에 비로소 인적이 통한다”라고 할 만큼 벽지였다. 대동여지도를 간행한 김정호도 “매계는 옛 이름이 청학동으로, 청학동은 지금의 매계라고 일컫는데...”라고 밝혔다. 청암면 묵계리 일대 ‘삼성궁’이 있는 곳을 청학동이라고 현재는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삼성궁과 인근은 상업적인 곳으로 변해버려 이름만 삼성궁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모두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빨치산들과의 최후 격전지였을 만큼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악양벌판을 지리산 고산준령이 병풍처럼 두른 매계마을

 
악양면 매계마을은 2024년 8월 현재 65가구 105명이 소담하게 살고 있다. 매계마을은 하늘을 담은 악양벌판을 조망하는 산중턱에 위치한 곳이다. 악양벌판에서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야 한다. 매화(梅) 꽃잎이 흐르는 계곡(溪)이어서 매계마을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경로당과 뒤편에 북카페와 나눔식당이 있다. 나눔식당은 매주 수요일 주민들이 식재료를 서로 가져와 함께 식사를 하며 마을 공동체 의식을 고양한다.
 
귀촌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인 매계마을이 ‘맷골 여름밤의 작은 축제’를 이어온 것은 2017년 마을 주민이 회합해 ‘산골 음악제’를 개최한 것이 시발점이다. ‘산골 음악제’를 통해 외부에서 전입해 온 주민과 기존 주민 간 이웃끼리 정겹게 나누기 위해 마련했다고 한다. 매계마을은 하동군 귀농귀촌 화합 선도마을 3곳 중 1곳으로 선정되었다.

늦여름 더위도 플리마켓을 막을 수 없다

 
산골 음악제는 해가 섬진강 너머로 넘어가는 4시부터 시작했다. 마을 입구의 북카페와 나눔식당 앞마당에 축제 장소를 마련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참석자들이 텀블러를 가져와 매계마을에서 만든 매실차를 담아 마신다. 악양면에 있는 소품점과 독립서점, 주민들이 직접 채취하여 만든 녹차, 의류와 소품을 나누는 플리마켓도 열렸다. 지산지소(地産地消, 지역에서 생산한 생산물로 소비)로 작지만 강한마을인 강소마을이다.
 
4시 30분부터 마을과 외부 참관객들이 함께 마을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다. 악양벌판을 바라보며 먹는 도시락은 도시의 값비싼 진수성찬과는 비교할 수 없다. 늦여름 벌판을 훑고 있는 뜨뜻 시원한 바람과 함께 청정한 공기 속에서 누리는 도시락 만찬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진다.

시를 노래하는 달팽이 공연

 
‘시를 노래하는 달팽이’의 공연을 시작으로 박남준 시인의 시낭송, 노래패 ‘세세세’ 등 다양한 장르의 야외공연이 산골에 울려 퍼진 잊지 못할 늦여름 산골 음악회였다. 거의 모든 지자체들은 일자리와 청년 유입에 올인하고 있는 성장형 정책보다는 매계마을처럼 강소마을이 점점 확산되었으면 한다. 지역에서 생산한 먹거리로 문화를 만들고, 교류하는 강소마을이 많아질 때 시골은 오지 말라고 해도 자발적으로 오는 장소가 되리라 확신한다.
 
일본 오사카 인근지역에 있는 카미야마(神山) 마을은 지역소멸 지역에서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는 마을로 변신을 성공했다. 예술가와 IT직종을 중심으로 지역에 거주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해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드는 지역이 되었다. 북해도의 히가시카와(東川) 마을도 ‘사진의 마을’로 브랜드화 하고, 일자리를 만들기보다는 꾸준하게 문화의 힘을 유지해 전입자가 증가하는 젊은 마을로 재생했다.
 
두 마을의 특징은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지 않았다. 마을에 맞는 사람들을 오히려 선발하여 고르는 마을이 되었다. 가게가 유명해져 도쿄에 납품할 수 있는 제품임에도 적정생산을 선택해 규모확장을 거부했다. 성장보다는 지역에 머무르는 ‘히가시카와 다움’을 선택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었고 작은 행복을 누리는 소확행을 추구했다. 얼마 전 악양에도 복합문화관을 개관했다. 총회에서 여유 공간을 공유 오피스로 만들겠다고 한다. 아쉬운 것은 한발 더 나아가 빈 집 등을 활용한 거주지를 함께 제공하면 좋지 않을까. 전국에 불고 있는 워케이션이 관광형이라면 체류형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진화하면 어떨까.
 
1978년 12월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개방체제를 선언했다. 이후 남부 지역 바닷가의 점(선전, 주하이 등)들을 선으로 잇고, 다시 내륙으로 확장하는 ‘점, 선, 면’ 전략을 실행했고 지금은 미국을 위협하는 세계 2위 국가가 되었다. 악양면은 화개면과 함께 외부인 전입이 많은 지역이다. 산골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는 매계마을은 주민들이 함께 재료를 가져와 식사하는 ‘나눔밥상’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입석마을은 최참판댁 인근으로 마을 미술관과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흩어져 있다. 이러한 마을을 점으로 이어 선의 형태를 취하고, 악양면 전체로 확산하면 어떨까. 악양벌판이 있기에 산업단지 같은 일자리가 아니라 예술과 IT 등 문화의 힘으로 악양다움 문화를 형성해야 하지 않을까.
 
2024년 정부혁신 종합계획(정부혁신24, https://bit.ly/3yVBc6W)에 올라온 전국 지자체의 정부혁신 실행계획을 보면, 대부분의 지역소멸지역에 해당하는 지자체들은 일자리와 주거지를 만드는 것에 몰려있다. 산업단지 조성과 스마트팜, 청년주택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70~80년대 성장기에 어울리는 정책들이다. 일본의 성공한 마을인 카미야마 마을은 20년 장기 계획을 가지고, 후손들이 살 수 있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정책을 이어가는 계획을 실행했고 성공했다. 지자체의 장이 바뀌어도 큰 변화없이 후손이 살아가는 마을 만들기를 추진한 결과다.
 
하동군은 2024년 8월 하동읍에 평생교육관 건립에 146억을 투입하는 기공식을 가졌다. 북카페와 작은 도서관, 강의실 등을 갖춘 대규모 3층 건물이다. 현재 사회복지관 등 시설의 교육장도 여유가 있는데 대규모 교육시설에 투입하는 게 이중이지는 않을까 살짝 우려된다. 차라리 개방형 도서관과 미술관 등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하고 교류할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문화예술과 IT는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영역의 하나다.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도 문화와 예술이 결합하여 성공한 사례다. 일본 히가시카와, 카미야마의 사례처럼 문화의 힘은 세고 오래가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
1. 곽재용, 『하동 문화 즐겨 읽기』, 하동문화원, 2015

2. 다마무라 마사토시 외, 『히가시카와 스타일』, 소화, 2020
3. 간다 세이지, 『마을의 진화』, 반비, 2020
4. 神山町, 神山町 創生戦略, 人口ビジョン まちを将来世代につなぐプロジェクト, 2018.3 v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