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041.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Perfect days with “Loving Vincent”

풀꽃처럼 2024. 9. 24. 15:49

《퍼펙트 데이즈》는 일본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의 일상을 따라간다. 매일 새벽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고 반복되는 일상을 계속 보여준다. 그의 시간은 흐트러짐 없이 진행된다. 일어나 씻고, 자판기 커피와 도쿄의 스카이 트리가 보일 즈음 팝송을 카세트테이프로 듣는다. 정해진 공공 화장실을 대충 청소하는 법도 없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청소한다. 점심은 편의점 음식을 근처의 신사에 가서 먹는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찍고, 일을 마친 후 목욕, 식사, 자기 전 독서로 마무리한다.

철저히 혼자서 정해진 패턴을 따라 삶은 정갈하게 반복된다. 그 반복에서 차이점은 매일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바뀔 뿐이다. 아날로그 필름이 다 채워지면 동네의 현상소에서 필름을 찾고, 마음에 드는 사진은 보관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폐기하는 것이 비정기적 삶이다. 매일 매 순간 바뀌는 햇살을 캐치하는 것이 유일한 변곡점이다.
 
공공 화장실 청소는 현대 사회의 직업계층에서 비껴선(?) 직업이지만 그는 상관없이 완벽한 날들을 즐긴다. 단골 가게에서 환대받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일상들이 삶을 맞추는 퍼즐이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여겨질 일상들이 그에게는 완벽한 하루로 충만하게 채워진다. 자판기 캔커피, 도교 스카이 트리가 보일 때 팝송 테이프를 밀어 넣고, 동네 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단골 가게에서 환대받고, 자기 전 책을 읽는 진부한 소품들이 진귀하게 보인다.
 
마르셀 뒤샹이 기성품인 자전거 바퀴와 소변기를 예술작품으로 변신시킨 것처럼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이 예술작품으로 변신된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자전거 바퀴와 변기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는 개념예술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 의미가 있는 것처럼.

히라야마의 삶이 예술 같다면 《러빙 빈센트》는 생전에는 비운의 화가였던 예술가 빈센트의 마지막 죽음을 추적한다. 빈센트의 우울한 유년기와 화랑, 선교사, 서점 등을 거친 후 28살에 그림에 입문한다. 미술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8년 동안 800장의 작품을 남긴다. 강렬한 색만큼 두텁게 칠하는 유화를 그려 늘 물감이 모자랐고, 동생 테오의 도움을 받았다.

2023년 서울,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에 전시된 고흐 작품, <우거진 들판의 나비>, 1890년
<우거진 들판의 나비> 를 가까이에서 촬영

영화는 그의 마지막 자살을 추적하는 과정을 유화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해 냈다. 굵은 물감으로 마음껏 덧칠하듯 거친 질감이 영화 내내 그를 떠올리게 만든다. 죽는 순간까지 비참한 예술가로 살았던 빈센트는 죽고 난 후 그의 작품은 화려하게 부활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물감 값이 없어 그림을 그려 주기도 했고, 평생 한 작품만 팔렸던 그림, 독서에 심취했던 빈센트는 빈자의 예술가였다.
 
반면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의 삶은 하루하루가 완벽한 예술이지만, 다른이에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해 빈센트와는 상반된 시간을 산다. 나에게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히라야마를 선택하지 않을까. 《쉘 위 댄스》의 스기야마에서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퍼펙트 데이즈》의 주름살 패인 노년의 히라야마의 평범하면서도 완벽에 끼워 넣는 일상의 습관을 선택하지 않을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은 청년보다는 노년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1996년 《쉘 위 댄스》에서는 주인공 스기야마를 연기해 일본의 수많은 남우주연상을 휩쓸었고, 2023년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 때 일본어를 배울 때는 닉네임을 스기야마로 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연륜이 든 지금은 히라야마에 어울리는 삶이 될 듯하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가 고독과 수용, 일상의 반복적 삶에서도 아름다움을 그린 반면, 《러빙 빈센트》의 빈센트는 삶은 퍽퍽했지만 그의 독서력과 작품만은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넘쳤다. 《러빙 빈센트》와 함께 《퍼펙트 데이즈》한 시간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고독 속에서 침잠했고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그것이 히라야마에게는 도쿄의 공공화장실 청소도 예술처럼 승화시킬 수 있었고, 빈센트에게는 무서우리만치 그림과 독서에 집중한 예술 그 자체였다.
 
《퍼펙트 데이즈》의 엔딩 크레딧에는 히라야마가 점심시간에 신사에서 매일 찍는 나무와 햇살이 "木漏れ日(KOMOREBI)"이며, 이는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뜻하는 말로, 찰나의 순간 동안에만 존재한다는 자막이 표시된다. 히라야마는 어쩌면 하루 중 이 장면을 통해 히라야마의 인생이라는 시간축의 아름다움을 순간 포착하는 기쁨이지 않았을까.
 
Perfect days with “Loving Vinc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