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다르게 보기
카라바조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바로크 시대 미술의 문을 열어젖힌 혁신 미술가이다. 원근법을 도입한 브루넬레스키(1377~1446)는 로마 고대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어 피렌체로 돌아와 50년 동안 불가능했던 피렌체 대성당의 마지막 돔 부분을 완성한다. 1419년 마지막 돔 부분을 어떻게 지을지를 결정하는 설계문제는 달걀을 대리석 위에 세우는 것이었다. 다른 공모자들은 해결하지 못할 때 브루넬레스키는 달걀의 밑면을 깨서 세웠다. 신빙성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훗날 ‘콜럼버스의 달걀’로 알려진다.

브루넬레스키는 소실점을 통한 원근법도 발견했고, 마사초(1401~1428)가 전수받아 <성 삼위일체>로 화면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교회 권력의 부패와 타락, 흑사병이 온 유럽을 휩쓸 때 교회도 속수무책이었다. 무리한 십자군 원정은 기사를 중심으로 한 귀족의 몰락을 가져왔다. 전쟁은 언제나 막대한 재정이 투입된다. 이슬람제국과 지중해 해상무역의 중심이 된 베네치아, 피렌체 도시들은 상인계급이 부를 축적해 사회의 상류층으로 부상한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아카데미를 설립해 인문학자와 예술가를 지원하며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으로 떠 오른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당시 가톨릭 교회에 의해 금기시되었던 시체 해부를 교회의 제한적 허락을 받아 신체의 근육과 골격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남겨놓는다. 신체의 해부도를 통해 보다 세밀한 인체 그림이 가능해지면서 입체감을 드러내는 원근법에 해부학이 결합해 보다 정교한 사실 표현이 가능해진다. 북유럽에서 시작한 유화기법은 긴 호흡으로 그림이 가능해지고, 수정도 가능해 보다 사실적이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전의 프레스코나 템페라 기법은 짧은 시간에 마무리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카라바조는 어둠을 통해 빛을 더욱 부각한다. 선택과 포기에 의해 화가가 원하는 장면을 보는 이에게 강렬하게 전달했다. 르네상스 시기는 모든 장면을 화면 가득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카라바조는 강조하고 싶은 부문 외에는 짙은 어둠으로 가려버렸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 빛을 투입시켰다. 또한 순간적인 동작 표현이 살아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장면, 화가가 보여주고 싶은 장면에만 집중하는 새로운 화풍을 선보였다.
카라바조 이전에는 화면에 그려진 물체가 실제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환영주의'였다면 이후에는 화가가 의도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연극무대에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듯 관객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는 바로크 시대를 열었다. 어둠으로 주제 외의 것을 가림으로써 빛이 드러나는 새로운 장르를 시작했다. 그의 기법은 이후 렘브란트로 계승된다.
혁신은 '다르게 보기'를 통해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에서도 '차별화'를 강조한다. 자영업자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곳에는 특이한 점이 없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다르게 보기'는 한순간에 번개처럼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단한 연습을 통해 굳은살이 박혀도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감이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지길 바라서도 안된다.

카라바조의 초기 작품 역시 평범함에서 출발했다. 그에게 영향을 미친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는 '다르게 보기'로 나아갔을 것이다. 강렬한 명암대비를 통해 그림의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은 카라바조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를 기점으로 바로크 화풍이 시작되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현재 일어나는 장면을 순간 포착한 것처럼 생생하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인간은 하루하루 살아가더라도 의도적으로 '다르게 보기'를 시도해야 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뭘까 등 계속해서 자기 뇌에 질문이란 송곳으로 찔러대야 한다. 뇌는 질문하지 않는 것엔 답변하지 않는다. 그저 최대한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여 생명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가진 기관이다. '다르게 보기'란 말은 관습에 저항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려는 자세의 다른 말이다.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도중에 곰을 만나거나 생명이 다하더라도, 낙차가 있는 폭포를 만나더라도 끈질기게 오르는 물고기의 본능처럼. 끊임없이 관습에 질문을 던지며, 확신에 의문의 고리를 걸고, 다르게 보기를 중지하지 않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