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080.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사필귀이(事必歸利)

풀꽃처럼 2025. 4. 2. 13:30

범죄 사실이 잔혹하고, 증거가 명백함에도 납득하지 못할 변명으로 반성하지 아니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피고인 서명주를 무기징역에 처한다.
 
2025년 4월 초에 종영한 MBC 금토 드라마 《언더커버 하이스쿨》 12부작의 최종회, 판사가 사학재단 이사장 서명주에게 선고한 판결문이다. 국정원 요원이 친일파 이사장이 설립한 학교 재단에 숨겨놓은 일제 강점기의 금괴를 찾기 위해 고등학생으로 위장 잠입해 해결하는 스토리 구조다. 악인은 처벌받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한 기승전결 구조다. 드라마가 결말로 향할수록 주인공이 곤경에 처하지만, 기가 막히게 신과 같은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마지막 승리의 휘슬은 언제나 정의로운 자의 손에서 울린다.
 
대부분의 드라마와 영화는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마무리된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은 사람의 뇌에 고착되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DNA에 각인된 유전자처럼 이어져왔다.
 
과연 그런가...
 
1892년 전라도 고부군에 조병갑이 군수로 부임한다. 그는 농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한다. 무고한 사람의 재물을 빼앗고, 이에 저항하면 권력으로 무차별 억압했다. 조병갑은 농민들을 괴롭혀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다.
 
1894년 농민들은 전봉준을 중심으로 봉기한다.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무기를 갖추고 부패한 권력에 저항한다. 집강소를 설치해 양반중심의 봉건사회를 혁파하고 신분차별을 철폐한다. 결과는 일본군의 개입으로 실패한다.
 
농민들을 수탈하고 권력을 휘둘렀던 군수 조병갑은 1년 만에 복직된다. 1898년 동학교주 최시형이 체포되고,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선고를 내린 고등법원의 판사는 조병갑이었다. 판결문은 인민을 선동한 우두머리 된 자로 최시형을 교수형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으로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은 일본군이 조선을 침탈해 국권을 빼앗는 빌미를 제공했고, 교주 최시형을 사형에 처하면서 그는 꿋꿋하게 살아남았고, 이익을 취했다. 그의 아들 조강희는 일제강점기에 경성일보와 매일신문에서 일했고, 친일신문인 동광신문에서 편집국장을 지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덕수궁 중명전
을사늑약을 반대하는 한규설과 민영기가 주먹을 쥐고 있다(이토 오른쪽 2번째, 3번째)

1905년 11월 18일 새벽 2시경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일제의 통치하에 두었다. 일제의 무력에 의해 최소한의 절차와 형식도 갖추지 못했던 조약이었다. 일본 군대를 동원한 강제조약에 참정대신 한규설이 완강히 거부하자 다른 장소에 감금시켜 놓고 조약을 강제 체결했다. 이완용 등 을사오적은 일제치하에서 권력과 부를 축적했다.
 
친일파들이 일제로부터 받은 토지 등으로 지금까지도 그의 후손들은 부를 누리고 있고, 국가에 토지반환 소송도 뻔뻔하게 제기하는 중이다. 독립운동을 위해 전재산을 헌납하고 만주에서 투쟁했던 후손들은 여전히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거나,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한반도에선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계엄 망령이 무덤에서 나왔다. 절차상의 하자가 있었다는 국무위원들의 증언과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 군인들이 일반 시민의 손을 강제로 묶는 등 무수한 증거들이 나왔음에도 계엄의 우두머리는 여전히 자신의 세력을 선동하고 있다. 불법 계엄의 현장상황은 전국민이 목도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3월 “우크라이나와 희토류 등 광물협정을 조만간 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이익이 우크라이나 평화보다 우선이다. 미국은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자국 인민, 정확히는 자국의 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인민의 고통 해소가 우선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의 해상봉쇄를 뚫기 위해 잠수함 작전을 통해 무수한 배들을 침몰시켰다. 1915년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침몰되면서 128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여론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참전을 거부했다. 미국이 결정적으로 참여한 계기가 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다. 영국은 독일의 비밀 전문을 입수했고, 이것이 윌슨 대통령을 움직여 미국이 참전하게 되었다. 독일이 멕시코와 동맹의 조건으로 미국에 빼앗긴 뉴멕시코, 텍사스, 애리조나주를 되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섬진강 평사리 벚꽃터널
눈부신 푸른 하늘은 벚꽃 그물이 수놓았다
섬진강변 벚꽃 산책길

사필귀정은 드라마에나 있다. 선량한 시민들의 마음에도 있다.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무리들은 오직 사필귀이만 머릿속에 들어있다. 사익에 눈이 먼 소수 엘리트는 불의는 견디고, 불이익은 견디지 못한다. 헌법의 최종 수호기관인 헌법재판소도 사필귀정이 아닌 사필귀이로 결말을 낼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명밖에 할 수 없는데.... 사방천지는 화사한 벚꽃이 분분히 날리는 찬란한 봄날이 눈이 시리도록 아프다.

 
 
참고문헌
1. 윤상옥. 『권력은 왜 역사를 지배하려 하는가』. 시공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