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루모스 솔렘(Lumos Solem)
“There is no good and evil. There is only power and those too weak to seek it”
2001년 개봉한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마지막 장면에서 해리로부터 불멸의 돌을 빼앗기 위해 볼드몰트가 내뱉는 대사다. 볼드몰트는 슬리데린 출신이다. 슬리데린 기숙사의 특징이 그렇듯 그는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선 어떤 수단이든 사용한다. 오직 파워만이 절대 기준이다. 파워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선이든 악이든 가리지 않는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선과 악의 판단에 대한 과정은 약한 자들이나 따지는 일이라고 한다.
호그와트 기숙사가 배정되는 과정에서 해리의 양면성이 충돌한다. 마법 모자는 해리가 용기와 재능이 있고 머리도 나쁘지 않으며,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갈망이 있다며 재미있어한다. 슬리데린 기숙사에 가면 확실하게 위대해질 수 있고 도움이 될 거라 하지만, 해리의 선택은 “슬리데린은 안돼”였다. 내면에 자신을 높이기 위한 열망이 있지만, 목적보다는 과정에 무게중심이 쏠린 기사도 정신이 돋보이는 그리핀도르로 결정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상사, 동료, 후배 앞에서의 행동과 말은 절제되거나 감추어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앞에서는 웃는 모습을 보이지만 흠이 있는 상사나 동료일 경우 험담을 폭로하는 유희는 얼마나 이중적인가.
뇌는 논리적인 좌뇌와 감성적인 우뇌, 왼쪽 눈과 오른쪽 눈, 두 개의 듣는 귀, 공기를 들이마시는 두 개의 허파, 오른손과 왼손 등 사람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입은 하나이기에 좌뇌와 우뇌를 거쳐 하나가 선택되어 밖으로 드러난다. 해리 역시 위대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슬리데린 만은 확실히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인간은 뒤틀린 목재라고 칸트는 말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기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의미다. 인간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큰 거짓말이다. 쇼핑몰의 유혹에 빠져 원하지 않는 물건을 산 적은 없는가? 내가 산 주식은 당연히 오를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숱한 물타기에도 불구하고 오르지 않는 경험은 없는가?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거 뭐 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2015년 영화 <내부자들>에서 언론사 논설주간이 온갖 비리를 저지른 재벌회장을 옹호하며 조언한 말이다. 2016년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은 언론사 기자들과의 저녁 식사자리에서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된다”, “민중을 개돼지로 취급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행시에 합격할 정도로 머리는 똑똑했던 것 같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퀴럴 교수도 해리처럼 머리가 좋았다. 책으로 공부할 때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1년 동안 세상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볼드몰트를 만나면서 그는 딴사람이 되었다. 한때는 괜찮았던 사람이 해리의 퀴디치 경기를 방해하고, 트롤을 기숙사로 들이는 악한 행동을 서슴없이 선택했다. 선과 악에 대한 판단 없이 오직 볼드몰트라는 절대악을 살리기 위한 목적에 자신이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것도 모른 채 어둠의 편을 선택했다.
영화 <내부자들>의 논설 주간이나 행시 출신 공무원은 권력을 위해선 약한 자와 강한 자는 당연히 차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티브 잡스도 부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지녔다. 그는 반물질주의를 신봉하는 히피였지만, 무료로 나눠주고 싶은 친구의 기계를 상업적으로 활용했다. 선불교 신봉자로서 인도여행을 다녀왔지만, 사업체를 설립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21세기 최대의 혁신가이면서 이런 이중적인 태도와 가치관들이 잡스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MBTI는 사람의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호그와트 마법학교 기숙사는 4가지로, 혈액형은 4가지로, 한국인은 태어난 해의 동물 상징인 12가지로 성격을 구별한다. 인간은 대부분의 유형이 섞여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독특한 우주를 형성하는 존재다. 양면성이 아닌 다면성이란 선택지에서 어느 것을 우선시하거나, 어느 것을 제외해야 하는지 순간순간 결정해야 한다.
패배는 적들에게 당하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패배한다. 양면성이란 선택지에서 해리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슬리데린을 선택했다면 위대한 마법사가 되어 또 다른 볼드몰트가 되지 않았을까.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해리처럼 확실히 아닌 것을 제외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기숙사가 배정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해리는 “슬리데린은 안돼”라며 선택지에서 지워버렸고, 최종적으로 그리핀도르로 결정되었다. 4지선다형 문제에서도 정답을 명료하게 선택하기 어려울 때는, 확실히 아닌 것을 지우는 방법으로 자신의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 차선책이다.
해리와 퀴럴 교수는 머리도 좋았고 재능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종착점은 180도 다른 결과였다. 쿼럴 교수는 ‘머릿속이 선과 악에 대한 온갖 우스꽝스러운 생각들로 가득한’ 상태였지만 힘을 선택했다. 양면성은 여전히 뒤틀린 목재인 인간내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똬리를 틀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마지막 장면에서 헤르미온느가 지팡이 끝에서 강렬한 빛이 나오게 하는 마법인 ‘루모스 솔렘(Lumos Solem)’으로 덫에 걸린 론을 구했다. 해리가 기숙사가 배정되는 순간 ‘슬리데린은 안돼’라고 외친 것처럼 손 안의 지팡이로 어떤 주문을 내릴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마법 세계든 현실 세계든 결정하는 사람의 태도가 쌓여 그 사람과 사회를 만들어간다. 인간은 뒤틀린 목재지만 뒤틀리면서도 오로지 빛을 선택해야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 참고문헌
J.K. 롤링.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 강동혁(역). 문학수첩, 2025
Columbus, Chris, director.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Warner Bros., 2001.
우민호, director. 내부자들. 쇼박스., 2015.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안진환(역). 민음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