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나는 나다, 나답게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
진주 명신고 장학생이었던 김종명 씨가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서 죄송하다”라고 말할 때 장학금을 주었던 김장하 선생이 한 말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주요 인물인 해리포터, 론 위즐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학생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어 간다. 각 기숙사의 학생들, 교장과 교사들, 절대악 볼드몰트,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켄타로우스와 유니콘 등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중 우편배달부 역할을 하는 부엉이와 해리포터에게 마법 빗자루 님부스 2000을 배달하는 가면 올빼미 6마리도 있다.
1917년 마르셀 뒤샹(1887~1968)은 평범한 기성품인 남성 소변기에 작가 이름만 서명하여 작품으로 제출했다. 이전까지는 예술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작품만이 예술로 인정되었기에 전시장은 소동이 일었다. 그에 의하면 공장에서 만든 기성품인 변기도 개념을 부여하면 예술이 될 수 있었다. 변기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자세히 관찰하면 우아한 곡선미를 느낄 수 있다. 우리 내면의 선입견이 얼마나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는지 깨우쳐 준 사건이다. 이후 앤디 워홀은 토마토 수프캔 등을 이용한 팝아트 시대를 열었다.
공장에서 만든 기성품인 소변기에 〈샘〉이라는 개념을 부여할 때, 소변기는 더 이상 화장실에 놓이는 소품이 아니다.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동일한 소품일지라도 ‘다르게 보기’를 통해 개념을 부여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 작품이 된다.
무대에선 누구나 주연이 되기를 꿈꾼다. 인생이란 무대, 영화배우란 무대, 작가라는 무대, 회사라는 무대 등 사람들로부터 화려한 주목을 받는 것을 꿈꾼다. 해리는 네빌이란 친구를 위해 말포이와 맞서고, 퀴디치 경기에서 저주 마법에 걸렸을 때 친구들의 도움으로 벗어나 승리를 거머쥔다. 마법사의 돌을 찾는 과정에서 론의 희생 덕분에 악의 부활을 막았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해리포터를 비롯한 각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알에서 깨어나려고 애쓰는 존재들이다.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상대방과 비교를 시작하면 주연과 조연, 엑스트라가 있을지라도 각 자의 세계에선 모두가 주연이다. 마르셀 뒤샹이 아무도 관심조차 없던 소변기에 개념을 불어넣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음을 선언했듯, 우리 각자는 삶이란 무대에서 자기만의 개념을 찾아가며 알에서 깨기 위해 투쟁하는 주체들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은 《의산문답》에서 인간이 다른 사물보다 귀하다는 것은 자기중심적 사고이며, 수직선인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한다. 지구는 둥글기에 모두가 세계의 중심이라며 당시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에 어퍼컷을 날린다. 다른 말로 바꾸면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두가 동등한 사람이며, 자신이 선 곳이 세계의 중심이기에 외부에서 정한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지 말고, 주체적인 인간이 되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무대라는 수평적 위치에서 보면 주연, 조연, 엑스트라가 구분되지만 하늘 위에서 보면 모두가 동등한 존재들이다. 각 자의 위치에서 모두는 세상의 중심이다. 자신만의 개념을 부여해, 자기만의 인생이란 예술작품으로 만들지는 개인의 몫이다. 조직 속에서 조연조차 아닐지언정 누가 뭐래도 내가 선 곳이 세상의 중심이요, 나 만의 시간을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예술가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마지막 장면에서 해리가 볼드몰트의 부활을 저지한 후 덤블도어 교장은 해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는 네가 그자(볼드몰트)가 힘을 되찾는 걸 잠시 늦췄지만 다음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어야 할 거다. 질 게 뻔해 보이는 싸움이라도 기꺼이 뛰어들 누군가가 말이야. 그러면 그자의 귀환이 또 한 번 늦춰질 테고, 그렇게 계속 늦춰진다면, 글쎄, 그자도 영영 힘을 되찾지 못하겠지.”
주연과 조연보다는 ‘질 게 뻔해 보이는 싸움이라도 기꺼이 뛰어드는 누군가’가 중요하다. '주연'이 아닌 '누군가'가 역할을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주연과 조연은 과정의 결과물일 뿐임을 덤블도어 교수의 대사에서 읽을 수 있다. 조연조차도 아닐지라도 마르셀 뒤샹처럼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의 알에서 깨어나려는 시도와 세상을 다르게 보기를 시도한다면, 누구나 자신이 서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고, 누구나 예술가다. 누구나 평범한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각자의 예술작품을 만들어가는 거다. 나는 나다, 나답게 살자.
<참고문헌>
1. 김유민. 2025년 4월 19일. 20년 만에 ‘양심 냉장고’ 주인공···알고보니 ‘김장하 장학생’. 서울신문. www.seoul.co.kr
2. 헤르만 헤세. 『데미안』. 이순학(역). 더스토리, 2021
3. 김태진. 『아트 인문학』. 카시오페아, 2020
4. 홍대용. 『의산문답』. 김영호(역). 파라북스, 2013
5. J.K. 롤링.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 강동혁(역). 문학수첩,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