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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산다는 건(7) : 영월 여행 3일째, 영월 모운동에서 영주 부석사까지

부산에 산다는 건

by 풀꽃처럼 2021. 12. 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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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고지 산 위의 구름이 머무는 영월 모운동(募雲洞). 1970~80년대 탄광업으로 번성했던 지역. 병원, 극장 등 번화가를 이뤄 산아래 영월지역 주민들이 찾아들었던 산 속 찬란했던 광산 도시. 가장 높은 위치의 광산 도시라 불렸던 곳. 막장 인생의 갱도에서 건져올린 검은 석탄으로 한 때 누구보다 부러울 게 없었던 하늘 아래 번성했던 도시.

모운동에서 조망한 영월의 가파른 능선들

산골짜기 또는 산꼭대기의 강원도 방언인 산꼬라데이길을 가파르게 오를땐 급격한 기압차이로 귀가 먹먹해지다 뚫린다. 산 밑의 온도와 산정상의 온도는 확연히 차이난다. 구비구비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둘러쳐진 우뚝한 산들의 군락은 전라도의 펼쳐진 평원과는 대조된다.

탄광 마을은 벽화 마을로 변했다(옥동광업소의 사택으로 쓰였던 건물)
탄광으로 가는 길, 고되기 보단 낭만에 젖은 모습의 동상이 의외다

마을에서 20여분 떨어진 광산으로 가기 위해선 산허리 길들을 돌아가야 한다. 막장 인생이라 불릴만큼 신산했을 날 들. 인생은 성공하기 위해 분투하는게 아니라 다가오는 하루를 버텨내야만 했던 검은 날들. 인생의 막장에서 다시 시커먼 땅 속으로 육체를 밀어 넣어야만 입에 밥을 넣을 수 있었던 곳. 가까운 사람이 죽어 마지막 불꽃을 사르는 화장터에서도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허기가 돌아오는 기만적인 자신의 육체가 한없이 서러웠던 순간들. 어디가 막장인지 혼란스럽다.

한때는 석탄을 채굴했을 입구가 지하수를 분출하는 출구가 되었다
황금폭포 전망대에서 본 황금 폭포와 가파른 협곡

갱도로 갈 때는 기온이 낮아 상고대가 일부 폈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보니 상고대는 사라지고 없다. 자연은 한 치의 기다림도 없다. 묵묵히 제 길을 간다. 후회함이 없다. 인간만이 후회한다. 자연에 무르기는 없다. 인간만이 무르기를 한다. 박찬호의 손에서 떠난 공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쁜 공이면 깨끗이 잊고, 다음 공을 던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후회할 시간에 다가올 선택을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늘 자연에서 한 수 배운다.

구비구비 휘감아 오르는 단양 보발재

한 마리 보아뱀이 구불구불 산을 휘감아 오르는 모습이다. 단풍이 붉게 채색되는 가을이 절정인데, 지금은 허물을 벗은 뱀처럼 잿빛 공간속에 보아뱀이 꿈틀거리는 형상이다. 보발재는 고드너미재로도 불린다. 이 곳은 고구려 군과 신라군의 국경 분쟁이 심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영주 부석사의 석양을 보기 위해 중간 비는 시간에 이 곳에 들러 사진 한 컷 남겼다.

부석과 부석사의 석양

석양에 부석(浮石)이란 글자가 더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인다.

부석사의 석양

겨울 석양이 잎을 떨군 나뭇가지 것처럼 황량하게 보인다. 오늘 석양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다. 급작스런 강추위를 기다린 인내엔 미치지 못한다. 천지(天地)는 인자하지 않다(不仁). 인간만이 자신을 위해 모든게 잘 되길 바란다. 그래서 실망한다. 자연은 그렇지 않다. 不仁하니깐.

석양이 삼층 석탑에 부딪쳐 찬란하게 산화중이다
제 빛을 다 내어주고 사라지는 태양
부석사 석양(2021. 9. 27)

영주 부석사의 석양은 산에서 보는 첫번째로 꼽을 만한 멋진 장면으로 기대를 했었다. 겨울에 지는 석양의 위치는 소백산 허리로 떨어진다. 석양이 소백산의 허리가 아닌 평평한 곳에서 떨어지는 9월말과 10월초의 시점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평평한 곳으로 석양이 떨어지면서 그 빛을 최대한 하늘에 공작새의 펼친 모습처럼 화려하게 뿜어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올해는 보지 못했으니 내년을 기다려야 겠다.

2박 3일간의 영월 여행. 편안하게(寧) 머물다 넘어왔던(越) 곳. 직선이 아닌 곡선의 고장. 공기도 숨죽이는 곳. 한때는 찬란했던 막추픽추처럼 구름 위의 화려했던 탄광도시 모운동(募雲洞)이 있다지만, 좋은 벗들이 최고의 선물이요, 자연은 양념 역할을 했던 시간.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석양은 솟아오르기 위해 떨어진다. 사람은 만나기 위해 헤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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