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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산다는 건(8) : 산복도로 유치환 우체통 ~ 민주공원 ~ 보수동 책방골목~부평동 깡통야시장

부산에 산다는 건

by 풀꽃처럼 2022. 1. 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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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걸은 곳 : 유치환 우체통 ~ 스카이웨어 전망대 ~ 초량1941 ~ 민주공원 ~ 보수동 헌책방골목 ~ 부평동 깡통야시장

1월 2일, 오늘은 겨울이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천연 비타민D 햇살을 흡수할 수 있는 온화한 날씨다. 겨울 옷 중에서 가벼운 옷을 걸치고 나선다. 부산지역 BRT(Bus Rapid Transit, 중앙 버스 전용차로) 확대로 대중교통 이용이 훨씬 빨라졌다. BRT 차선을 거침없이 달려 부산컴퓨터 과학고에 하차했다.

초량동 산복도로에 위치한 유치환 우체통

우편국에서

진정 마음 외로운 날은
여기나 와서 기다리자
너 아닌 숱한 얼굴들이 드나는 유리문 밖으로
연보랏빛 갯바람이 할일없이 지나가고
노상 파아란 하는만이 열려 있는데

친일파 의혹이 일고 있는 청마 유치환. 거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무, 부산, 경주에서 국어교사와 경주여고, 경남여고, 부산남여상 교장을 역임했던 문학인. 1967년 부산남여상 교장 근무시 야근을 마치고 귀가중 수정동 봉생병원 앞에서 시내버스에 치여 유명을 달리했다.

고등학생 시절 수많이 인용되었던 그의 시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깃발 옆에 서면 아우성치는 깃발 소리를 듣지만 ㅎㅎ)으로 시작하는 <깃발>과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여'로 시작하는 <생명의 서>는 단골 인용시였다. 산복도로에 자그맣게 자리잡은 그의 우체통. 아래층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엽서를 쓰면 1년 뒤에 받아볼 수 있다. 진정 마음이 외롭지 않더라도 산복도로를 걷다 갤러리에서 잠시 휴식하며, 누군가에게 닿지 않을 엽서를 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카톡에 익숙해져 휘발성으로 사라질 문구가 아닌, 한 자 한 자 마음에 도장새기듯 꾹꾹 눌러쓰는 아날로그 감성도 좋을 듯하다.

스카이 웨어 전망대에서 조망한 산복도로 일원

청마 우체통에서 조금 걷다보면 스카이웨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올라 산복도로와 북항 일대를 조망한다. 렌즈 앞에 드리워진 겨울 나무의 가지 끝엔 봄소식이 달려있다. 겨울의 칼바람은 나무를 벌거벗게 만들었고, 나무는 가지 끝마다 봄에 대한 희망을 하나하나 틔울 준비를 한다.

일본 적산가옥을 개량한 초량 1941 카페

초량845카페의 뒷자락에 위치한 '초량 1941' 카페. 1941년에 지은 일본인 적산가옥이다. 구봉산 윗자락에 위치해 전망도 좋다. 부산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명소로 알려졌다고 한다. 초량(草梁)이라는 지명은 억새, 갈대라는 뜻의 우리말 '샛뛰'에서 유래했다. 이를 한문으로 적을려니 풀 초(草)와 기장 량(梁)이 결합해 초량이 되었다. 실제로 옛날 산기슭엔 '초량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 '초량 1941' 카페의 주력 음료는 우유다. 우연의 일치일까.

민주공원 건물 중앙에 위치한 횃불 형상 조형물
1970~1980년대 민주화의 거침없던 격동기 연표

부산은 민주화의 성지였다. 민주공원은 한국 근현대사의 기폭제가 되었던 4.19민주혁명과 부마민주항쟁, 6월 항쟁 등 굵직한 역사의 획을 기념하는 장소다. 2층 전시실에 연도별로 민주화의 기록을 볼 수 있다.

자유를 향한 외침

지난해(2021.12.22) 대선 후보인 윤석열 후보가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극빈한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 그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 논란이 됐었다. 23일 김종인 위원장은 “또 말실수한 것 같은데,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며, “자유를 구가하려면 자기에게 (교육과 경제역량 등이) 있어야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인 것 같은데, 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태희 선대위 총괄상황본부장도 문제가 된 발언에 대해 “살기 어려우면 자유나 평등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지 않으냐는 취지로, 표현이 충분히 되지 않다 보니 조금 이상하게 전달된 것 아닌가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1978년 동일방직 해고 근로자들은 "배우지 못해 아는 것은 없지만 불의와 타협할 수 없었고 가난하게는 살아왔지만 똥을 먹고도 참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친 것이 똥을 뒤집어 써야 할 만큼 큰 잘못일까요!"라고 외쳤다. 1978년 2월 동일방직 노조 대의원 선거가 있던 당일 사측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조합원들에게 똥으로 테러했고, 경찰은 구경만 했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했지만 자유를 외쳤던 노동자들이 민주화 시기에 수없이 많은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도 그들의 피와 투쟁으로 이루어졌는데,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과 감싸는 발언조차 핵심을 한참 비껴나고 있으니 허탈할 뿐이다.

학창시절 읽었던 당시의 불온서적급 책들

학창시절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에서 읽었던 책들이 눈에 띈다. <페다고지>, <한국사회변혁운동과 4월혁명>, <경제사 입문>, <광주민중항쟁>, <제국주의와 신제국주의>, <분단의 철장을 열고 이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 유물론> 등 한 때 책장에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책들이다. <한국사회와 지배 이데올로기>, <역사적 자본주의>, <우상과 이성> 등 빛바래고 누런 곰팡이를 뒤집어 쓴 5~6권이 상징적으로 지금 책장에 살아남아 청춘시절을 회고하는 촉매제로 남아있다.

민주공원 옥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항에 정박중인 국제 여객선

언제 국제 여객선을 타고 일본 후쿠오카에 갈 수 있으려나...저녁에 배를 타면 콘도 같은 내부시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잠들면, 아침에 일본 후쿠오카에서 깨었던 기억이 선명한데...코로나는 거의 모든 것을 우선멈춤 시켰다.

민주공원에서 보수동 헌책방 골목으로 내려가는 산복도로 급격한 경사도의 계단들

민주공원은 산정상에 위치해 있어 보수도 헌책방 골목으로 갈려면 무수한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높은 담벼락에 겨우 한명이 지나갈 수 있는 급격한 경사도의 계단을 미로처럼 내려간다. 아득하게 보이는 산복도로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만만찮은 산복도로 경사도의 산책길이다.

중앙공원에서 바라본 용두산 타워

그나마 용두산 타워가 돋보이게 보이는 장소에서 바라봤다. 한때는 부산의 상징이면서 만남의 장소이자 야외 나들이 명소였던 타워다. 지금은 고층 빌딩에 가려 초라하게 보일때가 많지만, 이 곳에서 조망한 타워는 우뚝 솟은(?) 모습이 부산의 상징처럼 그럴듯하게 보인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

전국에 마지막 남은 헌책방 거리인 '보수동 헌책방 골목'. 휴일이나 사람은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학창시절 잠시 빈 교실에서 잃어버린 문제집들을 헌책방 골목에서 발견하곤 했었다. 누구나 가난했던 시절 헌책방은 호황기를 누렸다. 한국전쟁 피란시기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헌책방 골목이지만 최근 8개의 서점이 철거되고, 3곳이 퇴거 통보를 받는 등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2019년 부산의 미래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부평동 깡통 야시장

부평동 깡통 야시장은 사람들로 붐빈다. 저녁에 와야 야시장의 낭만을 만끽 할 수 있을 듯 하다. 중국의 야시장에 비하면 규모나 종류에서 비교는 되지 않지만, 한국에서 이런 야시장을 만날 수 있다는 행복함이란. 야시장은 둘이상이 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혼자선 그저 눈으로 구경하고 지나쳤다. 탕추리지, 소고기 불초밥, 통닭, 어묵 등 먹거리들의 유혹을 뒤로하고 오늘의 산복도로 산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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