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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변산 채석강 나들이(2022. 3. 7) :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나?

부산에 산다는 건

by 풀꽃처럼 2022. 3. 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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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여행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채비를 갖출 수 있다. 과거에는 며칠 전부터 여행 준비물 리스트를 작성하고, 꼼꼼하게 챙겨도 여행지에 도착해선 꼭 한 두개 정도는 '앗차!'하고 빼 먹기 일쑤였다. 제일 많이 준비하지 못했던 품목은 스마트폰 충전 케이블이었다.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꼭 현지에서 충전 케이블을 구입하곤 했었다. 지금은 전날 여행 가방 하나 펼쳐 놓고, 필요한 옷가지 던지고, 책은 필수고, 스마트 폰 밧데리, 블루투스 키보드, 충전 케이블만 있으면 9할은 준비 끝이다.

여행하는 날은 어릴적 소풍가는 날처럼 새벽 보다 일찍 눈이 떠진다. 머리는 무겁다. 캐리어에 옷가지와 책들을 구겨 넣고 집을 나선다. 언제나 여행 일정은 투박하게 잡는다. 하루 2곳 정도만 정하고, 나머진 현장에서 결정한다. 오늘은 순창 채계산 출렁다리와 용궐산 하늘길을 우선 보기로 한다. 부산에서 3시간을 달려야 순창 채계산에 도착할 수 있다. 아침 9시 이전에 채계산 주차장에 도착해 출렁다리를 향해 계단을 걸어 오른다.

높이 75m, 길이 270m로 상당히 높고 길다. 출렁다리 밑면은 아래를 그대로 볼 수 있어 오금이 저린다. 혹시 스마트 폰을 꺼내다가 떨어뜨릴까 긴장이 되어 더욱 조심스럽다. 아침, 아무도 없다. 혼자다. 데크 계단이 1,000개을 넘는다. 숨이 머리끝까지 폭발한다. 가뜩이나 없는 머리카락이 폭발로 뽑혀 나갈려 한다.

출렁다리가 곡예사의 달랑거리는 밧줄처럼 늘어져 있다.
채계산 전망대에서 본 굽이쳐 돌아가는 섬진강

이른 아침에 홀로 여행지에 발을 들이는 호젓함이 좋다. 인적이 없는 데크길을 오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이 발자국에 찍혀 떨어진다. 한 발 한 발 떨어지고 내딛는 생각들이 꼬리를 이어갈 뿐, 해결책은 없다. 인생에 해답이 없듯 과정속에서 삶을 밀고 나가는 거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처럼 지나온 삶은 지나간 것일뿐, 가식적이든 놓친 것이든 남아있는 날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살아온 날들이 어떠하든 남아있는 날들은 하나하나 다가오는 날들이다.

용궐산 하늘길로 유명해진 바위에 새겨진 잔도

용궐산의 하늘길은 중국의 기기묘묘한 아찔한 수직 계곡의 허리를 감싼 잔도를 따라갈려는 것 같은데,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게 뭐야? 아주 짧다. 헛헛한 웃음까지도 안내려 간다. 콧김에서 그치는 수준이다. 그나마 용궐산의 하늘길 잔도가 생기면서 계곡에는 많은 전원주택들이 들어섰다. 4년전에 왔을 때는 차 한대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는데(그 땐 하늘길은 없었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있다.

요강바위

가로 2.7m, 세로 4m, 높이 2m, 무게 15톤 정도의 가운데 구멍이 뚫린 바위다. 억겁의 세월동안 물과 바람과 시간이 빚어낸 절묘한 자연의 작품이다. 1993년 도난을 당하기도 했단다. 포장도로가 잘 닦이면서 찾는 사람도 늘어났다. 요강 바위가 이전보다는 많이 닳았다.

영월 무릉리 요선암 아래의 돌개구멍(2021. 12. 16 촬영)

영월 무릉리 요선암 아래 계곡의 돌개구멍과 동일한 형태다. 영월의 돌개구멍은 요선정과 어우러져 무릉의 경치를 자아낸다. 순창의 요강바위는 홀로 존재감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월이 피안을 보는 경치와 조화를 이뤘다면, 요강바위는 저혼자 잘난 느낌이다.

변산 채석강

수억년의 세월이 흐를동안 아랫 토양은 눌리고 눌려 바위가 된다. 켜켜이 쌓인 지층들이 세월의 무게를 보여준다. 바람과 파도가 해식동굴을 만들고, 지층 운동이 켜켜이 저장된 토양을 밀어 올려 오늘 그 신비로운 현장을 본다.

새 一.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니?
새 二. 한 마리는 무심히 한 마리는 심드렁하게 파도에 말을 건다
새 三. 새삼스럽게 별 생각을 다하니...생각이 흩어져 날아간다...

햇빛은 파도에 부서져 하늘을 향해 빛을 발산한다. 하늘의 태양이 바다에 떨어지면 은하수가 된다. 밤에 볼 수 없었던 은하수를 부서지는 바다위에서 본다. 새 三 스럽게...

변산 바람꽃 <시인의 방>

큰 창을 통해 어촌이, 작은 창을 통해 대나무가 보인다. 갖출 건 다 갖췄다. 우드톤에 폭이 넓은 책상(나는 폭이 넓은 책상이 좋다), 관절이 자유자재로 꺽이는 조명, 생각이 창을 통해 책상 위에 내려 앉으면...카페 라떼 한 잔에 생각을 되새김질해 생각 속으로 다시 구겨 넣는다.

변산 바람꽃 앞의 해변에 누워있는 폐선

숙소에서 한 발 내려서면 닿는 해변. 배는 키도 닻도 없다. 제 삶을 다한 허리위의 목재와 아랫도리 녹슨 철판이 해변에 누워 있다. 꼬리를 잃어 바다로 돌아갈 수 없는 인어처럼 배는 그렇게 바다를 그리워할까. 찰랑찰랑 얕은 파도가 얄밉게도 배를 할짝할짝 놀린다.

하늘 구름이 붓질한 유화 느낌이 난다
까치와 석양. 석양이 내릴 때면 어김없이 새는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튀어오른다.
마을의 수호목인 버드나무도 바다에 드리운 해 그림자처럼 늘어서 있다.

새벽부터 석양까지 운전에 등산에 산책에 눌려진 피로는, 앙상한 가지처럼 몸과 마음을 푸석거리게 만들었다. 버드나무는 봄이 되면 다시 푸릇한 새싹을 틔운다. 제 몸은 껍질이 벗겨지고 뒤틀려도 언제나 싱싱한 녹색잎을 뽑아낸다. 사람은 각질이 일어나고 피부가 갈라지고, 목소리는 탁해지고, 걸음은 느려지고, 하루에도 수십 번 눈꺼풀은 내려오고, 도통 새롭게 돋아나는 게 없다. 나무가 매년 푸른 잎을 틔운다면, 사람은 그 마음속에서 푸른 잎을 틔운다. 사람은 겉으론 늙지만 속은 날로 새롭고, 나무는 겉은 새롭지만 속은 썩는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가? 살 만한가?

첫 번째 산이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self)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층 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 <두 번째 산> 중에서

내려놓음....얼마 전 이어령 선생이 죽음의 문을 통과했다. 그의 삶은 호기심으로 꽉찬 인생이었다. 마지막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 30분정도 죽음을 봤다는데, 기록이 없으니.....죽음이 눈 앞에 다가설 때, 얼마나 설렐까. 죽음이 죽음으로 끝날지, 어떨지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죽는 순간까지 호기심이 있다면, 살아온 날도, 살아갈 날도, 지나온 날도, 다가오는 날도,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생각의 사치가 아닐까...새 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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