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주올레 19일째 14-1코스, 숲의 바다(The sea of trees)를 지나고

올레길

by 풀꽃처럼 2021. 5. 19. 19:55

본문

2021. 5. 19(수)
14-1코스 9.3km  오설록 티뮤지엄 ~ 문도지오름 ~ 곶자왈 ~ 저지예술 정보화 마을.

올레 구간중 사유지를 통과할 때 감사 안내문

올레구간은 특성상 사유지를 지날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소유자의 불허로 구간을 우회할 때도 있지만, 오늘처럼 사유지 통과를 허가해 준 덕분에 빼어난 경치도 감상할 수 있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자연과 공기, 적당한 기간의 생명도 감사하고, 오늘처럼 멋진 풍광을 보도록 사유지를 열어준 소유자에게도, 올레구간을 만들고 다진 올레팀과 봉사자에게도 감사하다. 세상은 감사한 것들로 차고 넘친다.  당연히 무료로 무한정 공급되어 가격이 제로인 공기와 소중한 생명에 대한 감사함의 회복이, 소비와 물질 만능주의에 매몰된 인간성의 회복이 아닐까.

초입부터 시작되는 곶자왈
곶자왈의 숲은 깊다
용암이 잘개 부서진 표면이 녹색 이끼로 덮였다

곶자왈은 숲의 의미인 '곶'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로 이루어져 있다.  곶자왈의 바닥은 화산 분출시 용암이 오랜기간 동안 자연적으로 쪼개져 울퉁불퉁한 지형을 이룬다.  제주의 원시림이 곶자왈이다.  혼자 숲에 들어갔다간 곳잘 잃어 버릴 수 있다.  한 낮에도 숲 속은 어둡고 서늘할 정도로 제주의 숲은 아주 깊다.

문도지 오름에서 본 숲의 바다(the sea of trees)
숲의 바다 뒤로 한라산과 오름들이 펼쳐진다
문도지 오름의 사면은 이처럼 숲의 바다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문도지 오름에서 보여지는 풍광을 나는 '숲의 바다(the sea of trees)'로 명명한다.  제주의 어디에서 보는 것보다 깊은 숲의 두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숲의 바다로 유명한 곳은 일본 후지산 인근에 아오키가하라(青木ヶ原, 樹海)라는 곳이다.  이 곳은 세계에서 괴기한 장소 7위로 선정되기도 했고, 자살 명소로 유명해 2002년 78구, 2003년 100구, 2004년 108구로 늘고 있다.  지금도 인근 경찰서 홈페지에는 발견된 자살자의 유품과 인적사항을 올려 놓을 정도로 자살자들에는 인기있는(?) 곳이다.  2018년 한국에서 개봉한 <씨오브트리스(The sea of trees)>도 인생의 의미를 잃은 한 남자가 자살하기 위해 이 숲에 들어와서 겪는 기묘한 스토리를 담아냈다.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에 가까워 소수의 극장에서만 개봉했었다.

영화를 볼때 인트로 장면에서, 끝도없이 광활했던 숲의 바다가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는데, 문도지 오름에 올라 사면을 봤을 때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물론 크기는 다르지만).  문도지 오름의 숲의 바다는 일본 숲의 바다처럼 무서운 숲이 아닌, 한라산 인근에 펼쳐진 육지에만 있는 숲의 바다다.  오늘 같이 맑은 하늘이어야 제대로 볼 수 있으니, 흐린 날은 피해야 한다.

영화 씨오브트리 포스터
문도지 오름의 정상에서 일광욕 중인 제주마
가까이가도 꼬리로 벌레만 털어내고 있다

올레길에서 거의 유일하게 말이 방사된 형태로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참고로 소는 9코스).  말은 덜 무서운데 뿔 달린 소는 조금 무섭다.  특히 송아지와 어미가 같이 있으면, 더욱 조심 스러워진다.  말과 소도 조심해야 하지만, 발 밑의 배설물도 복병이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인 휴일이어서 그런지 올레구간에 단체 여행자들이 많다.  오월이 무르익을수록 땅의 열기도 점점 올라온다.  올레길 막바지로 올수록 피로감이 스믈스믈 올라오지만, 끝이 보이기에 연약해져가는 무릎에  분발을 촉구하며 오늘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많은 고마움을 잊은 채 산다.
지구의 자전, 달의 차고 기움, 파도의 오고 감, 콩알에서 돋는 싹, 피어나는 꽃들, 봄과 가을들, 형제와 연인들, 음악과 시와 동화들, 까르륵 웃는 어린애들, 반려동물, 숲과 새들, 물 한 잔, 맛있는 국수, 오솔길들, 땅을 적시며 흐르는 강, 그리고 바다!
이 기적들을 고마워하지 않으니까 등뼈가 휘도록 수고하고도 삶은 보람이 없다.  ‘고맙다’는 말은 창조적인 용기의 징표고, 어둡고 메마른 시대를 밝히는 빛이다.

장석주, 송영방의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있다>

올레길을 만들고, 사유지를 기꺼이 열어주고,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올레길을 정돈하고 있을 모든 이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 세 가지 감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적어보면 좋겠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