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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

독서

by 풀꽃처럼 2021. 4. 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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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0대 애장왕 때 정수라는 승려는 황룡사의 말단 승려였다.   겨울철 어느 날 눈이 많이 왔다.  저물 무렵 포항 근처의 절에서 돌아오다 시내에 들러 천암사 절을 지나는데, 절 문 밖에 한 여자 거지가 아이를 낳고 언 채로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정수가 이를 보고 불쌍히 여겨 끌어안고 오랫동안 있었더니 숨을 쉬었다.  이에 옷을 벗어 덮어주고, 벌거벗은 채 절로 달려갔다.  황룡사로 돌아왔지만 그는 갈아입을 옷 한 벌 없는 가난한 승려였다.  겨우 거적때기로 몸을 덮고 밤을 지새워야 했다.  황룡사 승려 몇백 명에서도 말단의 승려 선행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운기의 <모든 책 위의 책, 삼국유사로 오늘을 읽는다> 中

 

삼국유사는 정사가 아니지만 신박한 얘기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신화와 설화의 보물창고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많이 읽지만, 정작 삼국유사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각 지역에 흩어진 문화유산이나 관광지의 전설로 소개되고 있을 정도다.  불교 중심의 일화들이 많지만 그 당시 지배적인 종교가 불교였음을 감안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한국인의 피 속에 흐르는 정서에 적합한 신박한 얘기들이,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발음하기 어려운 신들 보다는 훨씬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얘기 속에서 지금 현재도 여전히 수긍하는 얘기가 많은 것은, 외형적인 문명이 발달했을진 몰라도, 내면의 정신 문명은 더욱 타락하고 각박해져 가는 시대에 더욱 필요한 내용들이다.

 

한국에도 과연 그리스 로마 신화같은, 중국 사마천의 사기열전처럼 곱씹어도 진국처럼 얘기거리가 많은 책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는데, 삼국유사의 문학 작품 속에서 그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황룡사 말단 승려인 정수라는 인물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가난한 구두장이 시몬, 성경에 소개되는 유대인이 이방인 취급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처럼, 물질문명은 첨단을 달리지만 이웃을 향해선 더욱 매몰찬 첨단으로 향하는 시대에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지 자문하며 반성해 본다.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10:29,37).

 

율법 선생의 질문에 예수께선 그 당시 지배계층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피했지만, 유대인들이 이방인으로 여기는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들려주면서 역설적으로 율법 선생에게 되묻는다.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이 누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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