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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겨울 첫 한파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3. 12. 3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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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봄날 같은 산골이었다. 평지에선 벚꽃과 개나리가 피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틀 전 저녁바람이 날카로워지더니 어제 저녁은 칼바람이 되어 산골짜기를 헤집고 다닌다. 8시 정도 되어야 건너편 삼성산 능선으로 햇살이 비친다. 오후 3시가 되면 반대편 능선으로 해가 넘어간다. 낮 7시간 정도 해는 산골을 데우곤 급히 추위를 피해 달아난다. 가뜩이나 추운 산골에 해님마저 잠깐만 얼굴을 비추니 기온이 오르려 하다가 급강하한다.

눈 내린 이른 아침


장작을 아궁이에 적당이 집어넣으면 방안 공기는 따뜻한 기온이면 25~26도가 될 정도 따뜻하다. 급격하게 추위를 맞은 어제 저녁은 장작불로 지폈지만 17~18도에 머무르고 만다. 장판이 뜨겁게 달구어졌는데도 겨울의 한파에 버티지 못했다. 새벽에 조금 추웠다는 느낌이었고, 아침에는 겨울 외투를 입어야 할 정도로 밤공기도 차갑다.

손바닥 반만큼의 거실은 냉기로 충만하고, 화장실은 시베리아 수준 추위다. 발효차를 끓이기 위해 수도꼭지를 열었지만 물이 나오지 않는다. 간밤의 추위에 물조차 얼어붙었다. 당연히 화장실 물도 공급중단 상태다. 씻을 수도 용변을 볼 수도 없게 되었다. 서둘러 온라인 주문으로 생수를 주문하니 빨라야 이틀 후에 도착한다. 산골의 불편한 겨울 지내기는 이제 시작이다.

눈이 온 마을을 추위로 덮었다


도시에선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 벌어졌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다니... 도시에선 불편함이 없이 지냈던 겨울이었다. 단지 온도의 높고 낮음만으로 추위의 수준을 느꼈다. 산골의 겨울은 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불편하다. 구례읍에 다녀올 때 급하게 생수라도 사 와야겠다.

공터에 주차된 차는 새하얗게 서리를 덮어썼다. 트렁크에서 에탄올 분무기를 뿌리니 서리가 사라지더니 다시 앞유리에 얼음 결정들이 꽃으로 피어난다. 눈의 결정들이 점점 커지면서 시야를 방해한다. 시동을 걸고 100미터 정도 이동해 태양볕을 쪼이면서 히터도 동시에 가동한다.

산골의 겨울에서 맞이한 첫 한파는 낭만적인 시골생활에 대한 예상치 못한 고민을 선사한다. 도시에선 스마트 폰을 통해 즉시 배달되는 음식과 사시사철 불편함이 없는 공공서비스는 산골에선 먹통이 된다. 산골의 한파는 옷의 두께를 가리지 않는다. 차 안에 둔 생수는 이미 꽁꽁 얼어버렸다.

당연히 갖추어져 할 기본생활이 안 되는 산골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려사항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깨끗한 공기와 언제나 드라이브하듯 계곡을 오고 가는 운전은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인간은 이미 누리는 행복감은 당연한 기본조건으로 인식하고, 불편한 것만 부각한다. 산골에서 처음으로 만난 한파에 어리둥절 혼미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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