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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저항의 땅 구례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4. 1. 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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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는 '여순 10.19 사건(1948년)'의 최장기 피해지역이었다. 1947년 3월 제28주기 삼일절 기념 제주도 대회가 제주 북국민학교에서 개최되었다. 미군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이 죽었다. 경찰은 발포가 정당했으며 북한과의 공모로 사건이 발생했다고 포장하면서 제주 전역은 피로 물들었다. 제주 4.3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지만 국군은 동족을 죽일 수 없다며 항거하며 여수에서 일어난 것이 여순 사건이다.

구한말 1892년 고부군수 조병학의 비리로 촉발된 동학혁명도 전라도에서 일어났다. 전라도는 한반도의 곡창지대로 전 국민을 먹여 살리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도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으로 전라도를 지켜 일본의 군량지원을 끊은 것도 승리의 원인이다. 전라도가 곡창지대란 말은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지주는 소작료를 높게 책정하고, 소작인은 매년 지대와 세금으로 대부분의 곡식을 헌납해야 한다.

지주는 춘궁기 때 곡식을 높은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악순환의 고리로 소작인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2022년 세계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갔다. 하위 50%는 전체 소득의 16%를 얻는데 그쳤다. 역사는 시대가 바뀔지라도 소득불균형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전라도에서 민란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도 이러한 지주와 소작인간의 소득불평등과 곡창지대에 부임한 관리들의 착복으로 불평이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해방직후 북한에선 지주들의 땅을 무상으로 몰수해 소작인들에게 무상분배했다. 전라도 소작인들은 이승만 정권에 기대를 걸었지만 반공을 내건 친미정권에서 오히려 빨갱이로 몰리고 만다. 해방초기 인민위원회 설치로 짧은 기간 친일세력을 청산했지만 미군정에 의해 친일세력은 부활하고, 청산되지 않는 채 오늘에 이르렀다.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성공했지만 이상주의에 치우친 나머지 역사발전에 뒤처지고 만다. 동구 공산국가들도 공동농장이라는 '공유지의 비극'에 빠져 소비에트 연맹은 해체되고 말았다. 역사는 승자들의 해석으로 기록되기에 불평등 해소를 내건 사회주의 세력은 지금 한반도에선 불순한 빨갱이에 불과하다.

구례읍 중심에 위치한 봉성산 공원

구례는 저항의 땅이었다. 여순사건으로 폐퇴한 반군은 1948년 10월 구례읍을 점령했지만 3일 만에 국군에 뺏기고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국군과 경찰은 반군에 협조하여 구례경찰서에 구금된 80명을 구래읍 공성산 등지에서 사살하고 구덩이에 집단 암매장했다. 이후 유가족들이 시신 수습에 나섰지만 시신들이 뒤엉켜 신원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봉성산 유해발굴 작업을 했다.

봉성산 정상에서 바라본 노고단이 우뚝하게 보인다

전라도가 곡창지대였을 때는 반역의 땅이었다. 지금은 디지털산업이 한국의 곡창지대다. 그 곡창지대의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가 디지털 시대의 다른 얼굴의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가 현재 한국의 소득불균형의 현주소다. 서울공화국에 전체 인구의 1/4이 몰려있는 나라, 비정규직이 일상인 사회, 아무리 소작을 해도 바늘 하나 꽂을 땅을 마련할 수 없는 청춘의 퍽퍽한 삶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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