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020.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고로쇠 산신제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4. 1. 24. 17:15

본문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 일종이다. 고로쇠 수액은 골리수(骨利樹)가 어원인 만큼 칼륨과 칼슘 성분이 많아 골다공증에 효험이 있다. 게다가 당도는 3 브릭스 정도로 단 맛이 있다. 고로쇠 수액은 일교차가 커야 많이 채취할 수 있다. 야간 기온이 영하 3~4도, 주간 10~15도 정도가 되면 줄기 속 수분이 수축과 팽창 작용으로 고로쇠 표면에 뚫은 구멍을 통해 수액이 밖으로 배출된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오거나, 일교차가 적으면 수액 채취가 어렵기 때문에 자연이 주는 귀한 물방울이다. 캐나다의 유명한 메이플 시럽도 단풍나무에서 추출해 만든다. 메이플 시럽의 당도가 3~5 브릭스 정도 수준이다.

의신마을 표식을 한 천하장군들


고로쇠 산신제가 하동 의신마을 자락에서 진행되었다. 올해도 고로쇠 채취와 매출이 잘 되도록 고로쇠로 겨울 한 철 수입을 기대(?)하는 마을사람들이 고로쇠나무 앞에 차려진 제단에 모였다. 해마다 산진제는 구정 전 날 좋은 금요일에 열린다. 볕이 잘 드는 남쪽 산자락에 잘 꾸며진 장소가 마련되었다.

고로쇠 나무에 한지를 꽂으며 하나되는 의식을 치른다
제단에 돼지는 빠질 수 없다. 돼지는 돈을 받지만 쓰지 못하는 운명(?)이다.
제단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산진제는 고이 접은 한지를 고로쇠 나무에 꽂는 의식을 통해 신령에게 소원을 전하며 시작한다. 이장, 면장, 마을 사람 연장자 순으로 산신제를 지낸다. 여자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음식을 준비한다. 죽은 돼지 머리의 벌어진 입에 돈을 꽂으며 산신령에게 제를 올린다. 소원을 적은 소지를 태워 날리는 행사를 마지막으로 제단의 음식을 나눠 먹는다. 다른 마을은 하지 않는 추세인데 의신마을은 진행하고 있다. 산신제를 하면서 서로의 화합을 다지고, 사전에 통일된 마음자세를 가다듬는다는 장점은 있는 것 같다.

보통 한 농가의 경우 겨울 세 달 동안 500말(9,000리터)을 채취하면 3,000만원 수입을 얻는다. 한 달 평균 1,000만원 수입은 적지 않은 규모다. 인건비 등 제반 경비를 감안해도 꽤 많은 이익이다. 규모가 있는 농가의 경우는 1,500말(27,000리터)을 채취하면 9,000만원(월 3,000만원) 수입을 올린다.

딱히 산골에서 할 일이 없는 나에게 이틀 동안 고로쇠 채취 아르바이트 요청이 들어왔다. 1말(18리터) 통에 따뜻한 물로 채워 배낭에 넣으니 등에 지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일반적으로 혼자 백패킹 배낭을 꾸릴 경우 체중의 20~23% 수준의 배낭무게를 꾸린다고 한다면, 체중 70kg이면 배낭 무게는 14~15kg가 된다.

그런데 고로쇠 수액 채취 사전작업에 짊어져야 할 장비는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호스를 청소하는데 필요한 장비는 따뜻한 물 18리터, 주정 2리터, 기타 장비까지 짊어지면 21kg 정도가 된다. 태어나서 한 번도 짊어져 보지 못한 무게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다. 이처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길도 없는 산비탈을 걸어야 하는 어려움이 가중된다. 아무렇게나 뻗은 가시 돋친 나무를 헤쳐갈 때마다 한 발 한 발 딛는 것이 고통이다.

길이 없는 비탈에서 고로쇠 수액 채취 호스를 청소하고 있다


숙련자들은 벌써 저 멀리에서 고로쇠 수액 채취 호스를 청소하고 있다. 호스 청소는 먼저 술의 원료가 되는 주정을 호수에 부은 후 따뜻한 물을 충분히 공급하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호스를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다. 호스 안에 있는 곰팡이와 이물질을 주정과 따뜻한 물로 씻겨내리는 작업을 사전에 해야 한다. 연결하는 호스가 손상되었을 경우 작업도구로 수리하거나 교체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몸에 21kg를 짊어지고 개울을 건너는 것도 어려운 단계다. 숙련자 2명은 벌써 지나갔는데 나에겐 미션 임파서블이다. 짊어진 짐이 없다면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징검다리의 간격이 만만치 않다. 마음은 급하고 개울을 건널 다른 지점을 겨우 찾았지만 신발과 바지는 젖을 수밖에 없었다. 고로쇠 채취 호스를 청소할수록 물이 빠져나가 등짐은 가벼워진다.

고로쇠 수액 채집하는 탱크를 지게차로 옮긴다
고로쇠 수액 모집 탱크를 산밑에 놓고서야 하루 아르바이트가 끝났다.


오전 18리터의 물과 2kg의 주정을 사용했고, 오후에도 동일한 무게로 고로쇠 채취 호스를 소독했다. 다음 날은 고로쇠 수액을 최종단계로 모으는 1톤짜리 통 5개를 깨끗이 소독하고 산비탈에 설치하고서야 마무리했다. 그냥 마셨던 고로쇠 수액은 단 맛에 행복했지만, 준비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은 중노동이었다. 이마와 등에서 땀이 흘러야 할 수준의 고강도 노동이었다.

하동군은 의신마을 등이 위치한 화개면, 악양면, 청암면 일대에서 연간 120만 리터를 생산해 40여 억원의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며칠 전 뒷집에서 올해 처음 채취한 고로쇠 수액을 마셨다. 산지에서 먹는 고로쇠 맛은 맥주 공장에서 갓 나온 생맥주를 마시는 것처럼 원액에 가까운 최고의 순도를 느낄 수 있는 단 맛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아르바이트는 거절해야겠다... 아~흑 ㅠㅠ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