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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소설가 조정래의 위대함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4. 1. 2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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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10권, <한강> 10권을 읽었다. 12월 초부터 1월 초까지 한 달 동안 20권을 완독 한 지금 가슴이 뻐근하다. 활자를 눈으로 읽었을 뿐인데 그 활자가 두뇌 신경회로의 곳곳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온몸의 호르몬을 자극해 역사의 빈서랍이 꽉 찬 느낌이다. 머리에는 소설의 인물들이 잔물결을 일으켰지만, 가슴은 뭔가 불끈한 기운이 부풀어 올랐다. 얼마간은 이 뻑뻑한 느낌이 무겁게 일상을 출렁일 것이다.

1935년 벌교에 건립된 보성여관
보성여관 내 조정래 작가가 즐겨 앉았던 자리에서 녹차를 마신다


해방직후부터 6.25 전쟁, 휴전에 이르기까지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태백산맥> 10권이 전남 벌교를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다루었다. <한강> 10권은 전남 강진에서 서울에 입성한 형제를 중심으로 굵직한 한국 현대사를 통과한다. 1954년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 1960년 4.19 혁명, 1961년 박정희 5.16 쿠데타, 1972년 유신헌법, 1963년 파독 간호사와 광부, 1964년 월남 파병, 1973년 중동 건설 붐, 1979년 박정희 저격에 이은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8 항쟁까지 숨 가쁘게 다룬다. 그 물결은 수도권에 집중된 강남 부동산 불패신화의 저수지로 모인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인물들은 떠오르며 가라앉고 전복하고 좌절한다.

벌교 벌판


<태백산맥> 10권이 주로 빨치산으로 지면을 채웠다면, <한강> 10권은 굵직굵직한 현대사를 10권이라는 짧은 분량(?)으로 다뤘기에 하루에 2권까지 읽게 만드는 긴박감이 있었다. 현대사를 거쳤지만 주인공은 인간군상이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기에 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리는 짧은 수명을 가진 사람의 한계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 지금 머물고 있는 의신마을과 가깝다. 걸어서 1시간 정도면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 있다. 지리산과 구례, 벌교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구례만 하더라도 여순사건에 희생된 유적지가 읍내에 있다. 

소설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사회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의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안면몰수 하는 동물이다. 인간이란 동물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이기적인 유전자를 몸속에 내장한 채 진화해 왔다. 지구에 생존해 왔던 인간의 역사가 악이 메인 스트림을 형성했기에 인간이란 동물의 세계는 개선되지 못했다.

 
그 속에서도 함께 행복을 꿈꾸는 소수의 유전자들이 남았기에 선이 악을 이긴다는 실현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모난 돌이 정을 맞고, 튀어나온 바위는 파도에 먼저 떨어져 나간다. 20권 분량의 대하소설을 덮은 지금 인간 동물의 세계를 바라본다. 사람이란 동물은 그런 유전자에 의해 진화해 왔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 사람이니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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