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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황혼의 노을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4. 4. 2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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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으로 지는 노을이
눈가에 어리는 눈물
걱정만 안고 살아온 세월
서리서리 사연도 많아
꿈 많은 청춘을 아깝게 흘려보내고
세월은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만 가는데
- <황혼의 노을>, 노래 윤미

노을은 황혼기에 떠오르는 주요 단어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 너머로 기울어 사라지며 아쉬움과 미련이 노을로 물들인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만족보다는 아쉬움이란 개념과 어울리는 노을이다.

청춘은 노을을 아름답게 바라본다. 내일 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노년기의 노을은 회한이 묻어난다. 노을이 붉은 것은 햇빛이 낮보다 길어지게 되면 파란색은 대기 중에 산란되어 사라지고, 파란색보다 파장이 긴 붉은색이 대기 중에 남아 인간의 눈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하루의 수명을 다했기에 붉은 아쉬움만 서쪽 놀에 남긴다. 노을을 과학으로 보면 삭막하지만 논리적이고, 문학으로 보면 황홀하다.

이인(2001).색색풍경.전남도립미술관

황혼의 노을은 서쪽을 붉고 아름답게 물들이기에 보는 이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노을은 아쉬움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화려한 불꽃을 서쪽 하늘 빽빽하게 수놓는다. 노년의 삶도 이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에 아름다움을 선사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세상에 누가 되어서는 안 되어야 할 텐데...

노년은 자기 주변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시기다. 나무가 겨울을 지나기 위해 잎들을 떨구는 것처럼 노년의 사람은 자연스럽게 일과 사람이 떨어져 나간다. 왕성한 활동기에는 매일이 바빴지만 노년기에는 철저히 낯선 고독의 공간, 앙상한 가지가 드러나는 겨울나무가 된다.

세상에 어리석은 일이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온다.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며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다. 진짜 외로워야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 내 자신에 대해 진실해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진다. <바닷가 작업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김정운

노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외로움과 친해져야 한다. 그동안 직업과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면 노년에는 오롯이 자기의 내면으로 전환해야 한다. 화려한 광합성이 끝난 벌거벗은 나무가 되어 자신에게 단단해져야 하는 시간이다.

황혼의 노을이 아닌 화려한 노을이 되어 마지막 작품을 서쪽 하늘에 가득 채우고 사라져야 하지 않겠나... 아니면 민폐나 끼치지 말든가... 노을은 화려한 마무리할 것인지, 낮을 놓지 않으려는 노망이 될지는 자신의 몫이다. 나이 들수록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지 하나라도 더 움켜쥐려는 어리석음은 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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