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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영화

by 풀꽃처럼 2021. 12. 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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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2021년 작품이다. 그의 고향인 나폴리를 배경으로 제작한 자전적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축구 선수 마라도나가 나폴리 구단으로 이적을 추진한다. 평범한 집안의 둘째인 파비에토는 고등학생이며 축구광이다. 아버지가 나폴리 축구장 연간 회원권을 파비에토에게 선물한다.

영화의 장면에서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손을 이용해 골을 넣는다. 아르헨티나는 우승했고, 그는 대회 MVP가 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신의 손’이다. ‘신의 손’은 이중적인 뜻을 가지는 듯 보인다. 마라도나가 부정한 방법으로 골을 넣었지만, 그는 “신의 손이 공을 쳐 넣었다”고 말했다. 신을 핑계로 자신의 골을 정당화했다.

영화에서 파비에토의 부부는 남편의 불륜으로 갈등을 겪는다. 이후 그들은 극적으로 화해하곤 스키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둘째인 파비에토도 동행할려 했지만, 결국 부부만 떠났고 스키장의 숙소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 파비에토의 절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의 손’은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이 화해하고 해피엔딩으로 빠져나와야 할 시점에 극적인 갈등이 분출된다.

파비에토는 ‘신의 손’에 의해 목숨을 건진 것일까, 아니면 가족의 화해를 무너뜨리는 ‘신의 손’에 의해 절망의 나락으로 들어간 것일까. ‘신의 손’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파비에토는 다가오는 날들을 향해 나아간다. ‘신의 손’은 인간 누구의 편도 아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 문구를 좋아한다. 하늘의 비는 악한 자든 선한 자든 가리지 않고 내린다. 사람은 자연이든 신이든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지길 간절히 원한다. 입시철이면 종교시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만약 하늘이 소원을 이루는 사람들의 소원을 모두 들어준다면 자연은 존재할 수 없다. ‘신의 손’은 노자 도덕경의 ‘天地不仁’처럼 인간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악한 자들이 잘 살고 오래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 이래 선인들은 왜 악한 자들이 잘되는지 의문을 품었지만 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인간이 생각하는대로 정의는 곧바로 실행되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골치 아프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죽어야 할 사람은 죽지 않고, 더 살아야 할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들은 살아가야 한다. 다가오는 날들을 버텨야 한다. 억울하게 사업이 망해도, 뼈빠지게 일하지만 나아지지 않아도, 상실의 아픔을 겪어도, 선거에서 투표할 사람이 없어도, 내일에 대한 불안이 있어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한 가지 이상의 아픈 흔적들이 있다. 인간은 자기 앞의 다가오는 날들을 버텨내며 살아야 한다. ‘신의 손’은 인간을 위해 간섭하지 않고,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오직 ‘신의 손’이 이루어지길 가슴으로 안을 뿐이다.

어찌보면 영화는 희망적이지 않을 것 같지만, 버텨내며 살아야 할 파비에토를 보여주며 엔딩 크레딧은 올라간다. 자전석 성장 영화지만 인간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권의 좋은 책을 읽은 느낌이다.

※ 이 영화는 2021년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장은 봉준호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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