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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섬, 신안군 소악도~소기점도~대기점도 12사도 교회 순례

부산에 산다는 건

by 풀꽃처럼 2022. 5. 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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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뇌를 익숙한 환경에서 낯설은 곳으로 이동시켜 자신을 새롭게 하는 장치다. 뇌는 효율적이다. 효율적이란 말은 게으르다는 말과 동일하다. 뇌는 몸의 2%만 차지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5%를 소비하는 기관이다. 뇌는 익숙한 환경에선 철저히 작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낯선 상황에선 많은 양의 에너지를 투입하는 효율적인 신체기관이다. 집 안에선 눈감고도 다닐 수 있기에 뇌는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게으름을 피운다. 익숙한 환경에 오래도록 머무르면 사람의 생각이 나태해지는 이유다. 뇌를 낯선 곳에 던져 놓아야 뇌는 에너지를 가동한다. 뇌에 많은 자극이 주어지면 뇌는 말랑말랑해진다. 운동이 근육을 만들듯 여행은 뇌 근육을 단련시키는 운동이다. 여행을 떠나지 않는 건 자신의 뇌를 운동시키지 않는 행위다.

12사도 교회 순례로 알려진 신안군 소악도~소기점도~대기점도로 떠난다. 섬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많이 알려진 송공항을 통해서 들어가는 방법과 송공항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송도항에서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 곳 송공항은 섬의 주민들이 우선 승선한 후 여행객을 태운다. 여행객이 아닌 주민의 교통 편의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15명의 주민이 승선할 경우 여행객은 승선할 수 없다. 새벽 6시 30분에 부산을 떠나 송공항엔 11시 20분에 도착했다. 12시 50분 배를 예약할려고 하니 주민 우선 원칙에 따라 승선할 수 없었다. 오후 3시 30분 예매를 한다. 

하루 네 번 운항한다.

송도항은 송공항에서 운항하는 배보다는 규모가 크다. 여유롭게 표를 살 수 있다. 송공항에서 승선할려면 아침 첫 배나 마지막 배를 타야 한다. 인터넷 예매는 하지 않는다. 주민 우선 원칙이기 때문이다. 3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송공항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분재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애기 동백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지금은 동백철이 아니다. 분재공원에 있는 저녁노을 미술관의 동백 작품전을 관람한다.

육지에 핀 동백이 바다에도 피었다. 바다 물결에 동백이 넘실 거린다. 그 바다 물결은 해변의 집들을 푸르게 물들인다. 바다의 푸른 물결, 해안의 붉은 동백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동백은 겨울바다 꽃이다.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동백은 아름답다. 차가운 겨울을 견디는 동백은 시련을 견디며 피어나는 인생처럼 고귀하다. 어느 꽃이 동백처럼 감히 겨울 눈에 맞설 수 있으랴. 동백의 동은 겨울 이다. 겨울 나무다. 인생이 얼어 붙을지라도 동백꽃처럼 겨울을 견디며 붉게 피어나 희망을 보여주는 것처럼 동백이는 말없이 제 붉은 몸을 드러내 보일 뿐이다. 눈은 동백꽃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보이는 물빠진 갯벌

신안군에서 운영하는 소기점도에 있는 유일한 게스트 하우스. 하루 숙박비 2만원이나 숙소는 깨끗하다. 식당은 미리 전화로 예약해야 먹을 수 있다. 정식은 1만원. 저녁 밥을 기다리는 동안 물빠진 바다를 조망한다. 전라도 음식은 종류도 풍부하지만 맛도 보장한다. 1만원이 아깝지 않는 차림상이 나온다.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잇고 있는 노두길. 과거에는 섬과 섬사이를 사람들이 직접 돌을 징검다리처럼 쌓아 건넜지만 지금은 포장되어 썰물때는 자동차도 지나간다. 순례자의 섬을 여행할 때는 물때표를 잘 봐야 한다. 노두길이 잠기면 3~4시간은 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12사도 교회의 명칭은 카톨릭 구교의 명칭으로 이름지어졌다. 개신교의 12사도 이름과는 다르지만 사람은 동일하다. 괄호안에 표시한 명칭은 개신교에서 불리는 명칭이다.

소악도와 소기점도 노두길 사이에 있는 마태오의 집(마태).
떨어지는 태양 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나는 마태오의 집

마태오 복음서 저자로 알려진 마태오는 이디오피아 또는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마태오는 예수의 제자가 되기전 세금징수원이었다. 그 당시 세금징수원은 과도한 세금을 거두었기에 좋은 직업은 아니었다. 마태오는 회계사, 금융업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소악도에 있는 소악교회. 문준경 전도사 기념비 위에 보따리와 고무신이 보인다.

천사의 섬(1004개의 섬) 신안은 한국에서 교회가 가장 많았던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소악교회 앞에 '한국의 데레사 수녀, 섬마을 어머니 문중경 전도사(1891~1950)' 비석이 서있다. 섬마을 특성상 토속신앙이 뿌리내려 기독교가 자리잡기 힘든 곳에서 1년에 고무신 아홉 컬레가 닳아질 만큼 전도했던 전도사를 기념하는 비석이다. 1950년 한국전쟁때 북한군에 의해 순교당했다. 이 곳 12개 사도 순례길은 문준경 전도사가 섬사이를 걸었던 노두길을 모티브로 해서 조성되었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작은 야고보의 집(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작은 야고보의 집 내부. 기도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작은 야고보는 시리아에서 선교했고 순교했다. 몽둥이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유다 타대오의 집(다대오)
유다 타대오 집 내부. 창가에 누군가 올려놓은 묵주가 있다.

유다 타대오는 메소포타미아나 페르시아에서 선교하다 순교했다고 한다.

시몬의 집.

시몬은 알패오의 아들이며, 작은 야고보의 형제다. 열심당원(식민지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무력으로 대항했던 사람들)이며 페르시아에서 전도하다 순교했다고 한다.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 톱으로 몸을 세로로 갈라 죽이는 형벌을 당하는 순교였다고 한다.

가룟 유다의 집

예수는 가룟 유다를 지칭하며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다"고 말했다. 예수가 이끄는 무리의 자금을 담당했으며 횡령하기도 했다. 예수를 은전 30냥에 팔고는 자책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일차 순례를 마치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노두길에서 맞이한 석양
토마스의 집(도마)

2일차 새벽에 나서 처음으로 들른 토마스의 집. 토마스는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며 창으로 찔린 구멍난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나서야 부활을 믿었던 의심 많았던 제자다. 그는 인도까지 전도를 했으며 그 곳에서 순교했다. 인도의 수호성인이 된다.

뒷면에서 바라본 바르톨로메오의 집(나다나엘)

바르톨로메오는 아르메니아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산 채로 살가죽을 벗긴 후 머리가 베어졌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의 수호성인이 된다. 12사도의 교회에 유일하게 물 위에 떠있어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 새벽 일출을 맞이하는 모습이 신비롭다.

측면에서 바라본 바르톨로메오의 집
필립의 집(빌립)
필립의 집 내부. 작은 강대상 위에 성경책이 펼쳐져 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이며 바르톨로메오를 예수에게 소개했다. 그리스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순교했다. 그의 무덤은 터키의 파묵칼레에 있다.

요한의 집

큰 야고보의 동생으로 별칭은 천둥의 아들이다. 요한 복음과 요한 서신서, 요한 계시록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가 각별히 대우했던 제자들이다. 12사도 중 유일하게 순교당하지 않고 생을 누렸다. 로마에서 독배를 마셨는데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12사도 순례길에 소담하게 내려앉은 소기점도의 깔끔한 마을
큰 야고보의 집

세베대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이다. 별칭은 천둥의 아들. 12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다. 헤롯 아그립파 1세에 의해 참수형 당했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리 호수의 어부였지만, 예수의 부름에 따라 나섰다. 사도 바울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교회의 기둥'이라고 일컬었다.

야고보의 집 내부. 기도하는 모습이 비천상을 닮았다.
대기점도와 병풍도를 잇는 노두길로 1km에 이른다.
안드레아의 집(안드레)

시몬 베드로의 동생. 그리스에서 전도하다 체포되어 X자형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도 선교활동을 했다는 전승도 있어 스코틀랜드와 러시아의 수호 성인이 된다.

안드레아의 집 내부. 벽을 손으로 뜯어 낸 듯 자연스러운 형상 안에 십자가를 놓았다.
대기점도 선착장에 있는 베드로의 집

베드로는 예수의 수제자이면서 초대 교황이 된다. 예수 승천후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많은 이적을 나타낸다. 네로 황제가 로마를 불태우던 당시 체포되어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했다고 한다. 그의 상징인 열쇠는 현재 교황의 상징인 천국의 열쇠다. 순례를 마친 후 옆에 있는 종의 줄을 당겨 마무리 했다.

베드로가 어부임을 보여주듯 배가 뭍 위에 정박해 있다. 그는 호수의 물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예수를 만난 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현재 로마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은 가장 큰 성당으로 베드로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대기점도에서 출발해 송공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본 천사대교의 위용

대기점도항에는 여객 터미널이 없다. 시골 간이역처럼 막대기 하나 세워진 정류장 표시도 없다. 베드로의 집이 선착장의 끝에 서있다. 끝에 서 있으면 송공항을 출발한 배가 3~4곳을 들른 후 섬 주민과 여행객을 태운다. 운임은 배에 승선한 후 목적지에 해당하는 요금을 정산한다. 그 만큼 섬의 규모와 상주하는 주민이 작다는 걸 말해준다.

12사도 순례섬은 걸어야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순례는 두 다리로 한 발 한 발 찍는 것이지 자동차로 휘익 둘러보는 건 관광은 될지언정 순례는 될 수 없다. 순례는 오롯이 몸으로 걸으며 생각을 반추해야 제 맛이다. 첫 배로 들어와 마지막 배로 나가는 방법보다는 섬 안에서 1박 하는 걸 추천한다. 석양과 일출, 태양이 사라지며 아쉬움을 남기는 시원한 바람과 새벽 물안개와 차분한 공기를 느끼는 과외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섬여행에 휴대한 책은 소설 <섬에 있는 서점>이었다. 배편에 맞춰 도착하지 못했을 때, 배안에서 무료하게 있을 때, 숙소에서, 작은 섬들간 드나드는 배편은 많지 않기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넉넉하기에 책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어떤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나는 진심으로 아일랜드 서점을 사랑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고, 종교도 없다. 하지만 내게 이 서점은 이승에서 교회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섬에 있는 작은 서점 주인인 피크리는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알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와 대화하는 상대방은 무한대의 장르, 무한대의 책 내용에 대해 대꾸해야 한다. 어느날 그에게 다가온 책은 작은 아이였다. 잘 짜여진 이야기 전개는 책의 뒤쪽으로 이동할수록 갈등과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책(특히 소설)과 영화, 종교는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 소설, 영화, 종교는 현실을 왜곡시킨다. 현실에선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현실은 퍽퍽해 답도 없고 길이 없는 숲속이지만, 위의 부류에선 얼마든지 일어난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종교에 의지하는 건 뇌속의 호르몬을 분비시켜 잠시나마 입안의 껄꺼로움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어디를 가든 도서관을 지도에서 먼저 찾는다. '서점없는 동네는 동네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피크리 수준은 안되지만 손에 책이 있어야 안심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20대에 읽었던 <닥터 노먼 베쑨>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닌 그 뒤에 숨겨진 구조를 보는 눈을 길러준 책이다. 그러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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