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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배부름

독서

by 풀꽃처럼 2023. 6. 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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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한 도서관에서 책을 5권까지 빌려볼 수 있다. 두서너 곳만 다녀도 15권은 거뜬하게 보름동안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책을 읽지 않음에도 한도까지 빌렸다는 뿌듯한 감정이 마음을 꽉 채운다. 오늘은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점찍어둔 책을 발굴하러 사상도서관으로 향했다.

 

일요일 오전이라 도로는 한산하다. 9시 사상도서관 종합자료실 문을 들어가니 한켠에 신간코너가 보인다. 부산의 어느 도서관에서도 보지 못했던 웅장한 규모다. 웬만한 서점의 신간코너 못지않게 많은 책들이 어깨를 맞댄 채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시샘이 난다. 사상구는 인구가 많아서 신간이 이렇게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걸까.

우선 사전에 읽으려고 했던 신간부터 3권을 골랐다. 최근 미·중간 첨예한 기싸움을 벌이는 시점에 읽으면 좋을 <하버드대학 미중 특강>, 공감을 주제로 정신과 의사가 전하는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손 끝에서 무한대를 검색하지만 정작 집중력을 잃은 세대인 <도둑맞은 집중력>을 남이 채가기 전에 얼른 뽑아 한켠에 소중히 놓아둔다.

 

이제는 천천히 도서분류 0번 총류부터 9번 역사까지 한 칸 한 칸 책 등의 제목을 읽어나간다. 0번 총류, 1번 철학, 2번 종교, 3번 사회과학, 4번 순수과학, 5번 기술과학, 6번 예술, 7번 언어, 8번 문학, 9번 역사까지 하나하나 훑어본다. 아무래도 집중적으로 보는 건 3번 사회과학과 6번 예술, 9번 역사다.

 

대도시의 무한경쟁시대에 로컬로 눈을 돌려 속도보다는 방향을 지향하는 <로컬로 턴>을 고른다. 장년까지는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옆을 돌아보는 공감과 자연을 배우려는 유전자가 깨어나는 나이다. 그동안 대도시를 먹여 살린 로컬에 뭔가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해서 주의 깊게 선택하고 있는 책들이다.

 

사상도서관의 신간코너를 보면서 보물을 찾은 듯한 느낌이다. 그동안 둘러보았던 도서관의 왜소한 신간코너에 답답했다. 여기저기 도서관을 유랑하며 신간을 읽었는데 사상도서관에선 90%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신간들이 있으니 선택할 수 있는 책도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도서관은 책을 읽는 분량만큼은 확실히 보장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시골의 면소재지에도 작은 도서관이 있을 만큼 읽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가난한 자에게 돈은 없을지라도 시간은 평등하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시골에선 신간을 읽을 수 있는 확률이 도시보단 열악하다. 게다가 전국의 도서관 책을 빌리는데도 비용이 도시보다 많이 든다. 도시에선 전국의 도서관 책을 빌릴 수 있는 ‘책바다’ 배송료를 지원해 준다. 시골에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거리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시골에 대한 도시만큼의 지원책이 필요하다.

 

책을 한 꾸러미 빌려 나오는 발걸음은 뿌듯하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다. 책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오전이다. 읽고 안 읽고는 차후의 문제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다. 나에겐 책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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