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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25일째 12코스, 올레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다

올레길

by 풀꽃처럼 2021. 5. 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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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27(목)
12코스 17.5km 무릉외갓집 ~ 산경도예 ~ 도구리알 ~ 신도포구 ~ 수월봉 ~ 당산봉알봉 ~ 엉앙길 ~ 용수포구

제주올레도 어느새 25일째 접어들었다. 2코스에서 시작했던 올레길이 돌아보니 내일이면 모든 코스를 완주하게 된다. 이번까지 세 번을 완주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 2015~2019년에 걸쳐 구간을 나누어서 걸었다. 2020년에는 7월 여름의 절정기간에 베낭하나 메고 16일간 강행군으로 26개 코스를 완주했다. 소나기가 오면 오는데로 더우면 더운데로 휴식없이 걷기에만 충실했다. 올해는 성산쪽에 숙소를 한 달간 정해놓고, 하루 한코스 원칙으로 걸었다. 산술적으로 하루 16km 걸은 후,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책도 읽으며 여유있게 보내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하루 한코스 걷고난 후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면 좋을 듯하다. 마음 한켠 기억의 저장고에 차곡차곡 쟁여 놓은 것이, 기록을 좀 더 오래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좋은 방법은 제주에서 보름, 서귀포에서 보름 정도 숙소를 정해 놓은 것이 올레길의 접근성에서 편리할 것이다. 아니면 제주를 4등분해서 각 등분마다 일주일씩 숙소를 정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비용문제 등 자신의 형편을 고려해서 결정하면 될 듯하다.

제주의 밭길 낮은 돌담과 하늘은 경계없이 평화롭게 보인다. 올레길 늘 보았던 돌밭과 하늘이지만 여전히 제주스러움의 풍광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돌고래를 관찰할 수 있다는 신도리 해안의 돌고래 카페
신도해안의 도구리알 돌고래 관찰 지점

신도해안은 육안으로 돌고래를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이다.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돌고래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낚시꾼이 보이지 않는 물 속의 고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듯 할 순 없어 다음을 기약한다.

용암이 쿨럭 쿨럭 흐르다 그대로 응고된 모습
신도 바닷가의 도구리 중 하나

도구리는 나무나 돌의 속을 동그랗게 파낸 돼지나 소의 먹이통을 말한다. 신도 바닷가의 도구리에는 파도에 쓸려온 물고기와 문어 등이 서식한다는데 역시 보이지 않는다.

수월봉에서 본 차귀도(왼쪽)
당산봉알봉에서 본 차귀도(뒷편)

차귀도는 일몰의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일몰 시간에 수월봉이나 당산봉알봉, 차귀포구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는 잊지못할 추억이 된다. 사진 애호가들이 일몰 즈음에 차귀포구에 모여드는 이유다.

차귀도(遮歸島)라는 지명의 유래는 고려시대 중국 송나라 임금이 지리서를 보니 제주도가 인걸들이 쉴 새 없이 나올 땅임을 알고, 풍수지리사를 보내어 혈을 끊으라고 명했다. 풍수지리사가 임무를 끝내고 돌아갈려 하자 한라산이 노하여 매를 보내고, 풍랑을 일으켜 송나라도 돌아가지 못하게(遮歸) 했다고 차귀도라 불렸다는 전설이 있다.

차귀도 앞바다는 일몰의 명소이면서 관광객의 낚시체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전갱이, 고등어의 손맛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엉알길
엉앙길의 지층 모습
엉앙길의 2차 대전시 일제 갱도 진지

엉앙길은 수월봉 아래 바다쪽으로 난 깍아지른 절벽지대다. 엉알은 큰 바위, 낭떠러지 아래라는 뜻이다. 엉앙길에는 다양한 지층을 볼 수 있는 관찰로다. 나무의 나이테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지층의 나이테도 그런 역할을 한다.

이 곳 역시 일제의 갱도 진지 흔적이 보인다. 결국 동굴 진지는 제주도민이 동원되었을 것인데,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뻔뻔한 일본이다. 독일은 패전후 지금까지 철저히 반성하고 있지만,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 등 인근 국가에 저지른 만행을 반성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731부대로 악명 높은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군인들은 전법재판에서 처벌되지도 않았다. 전범들이 지금의 일본 정치세력의 뿌리다. 그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미국이고, 그들이 얻은 댓가는 731부대의 생체실험 자료였다. 당시 미국 검사 키넌은 "지식의 보호는 인류의 책임"이라며 불기소 처리했다. 여전히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에 사죄를 하지 않는 건, 그들의 뿌리가 전범이기에 사죄를 하는 순간 엄청난 자기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좌측 절벽에 하얀 부분이 생이기정
해안 바위에서 깃털을 털며 말리고 있는 가마우지

생이기정은 제주어로 새를 뜻하는 '생이'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진 말로 새가 날아다니는 절벽길이란 뜻이다. 절벽의 하얀 부분은 모두가 새의 배설물이다. 생이기정은 겨울새의 낙원이다. 생이기정에선 가마우지를 볼 수 있다. 가마우지는 잠수의 일인자로 '물고기 사냥꾼'이라고도 한다. 1분~2분 정도 잠수하는 실력을 인정받아 중국의 계림지역과 일본에선 물고기 사냥에 가마우지를 활용하고 있다. 한편, 가마우지는 기름샘이 없어 깃털이 물에 쉽게 젖는다. 가마우지는 다른 새와 달리 날개를 펼쳐 날개를 흔들면서 깃털을 말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용수포구의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과 기념관
제주표착기념관 김대건 신부의 서한 중 일부

김대건 신부는 최초의 한국인 신부이자 순교자다. 1945년 8월 상해에서 신부 서품을 받은 후 귀국하는 도중 표류해 이 곳 용수포구에서 첫 미사를 올렸다. 그 후 김대건 신부는 서울 등에서 선교 활동 중 체포되어 1946년 9월 서울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오늘은 한가로운 제주 밭길과 돌고래 없는 돌로래 해안과 수월봉의 빼어난 풍광과 그 밑에 파헤쳐진 일제시대 갱도, 김대건 신부의 표착지 등 여러 지점을 통해 제주를 보았고, 알았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보는 만큼 아는 것이다. 보는 행위를 통해 알아가고, 그 알아가는 만큼 보이는 것이기에 내일 또 보기 위해 걷는다.



결함이 있어도 괜찮다. 결함이 없는 사람은 없다.
죄와 한계는 우리 삶에 올올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모두 발을 헛디디고 휘청거린다. 삶의 묘미와 의미는 발을 헛디디는데 있다. 또한 발을 헛디뎠다는 것을 인식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휘청거리던 몸짓을 좀 더 우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더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
발을 헛디뎌 휘청거리는 사람은 여기저기서 균형을 잃으며 앞으로 넘어질 뻔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넘어져 무릎이 깨지기도 하며 삶의 길을 따라 어렵게 어렵게 걸어 나간다.
그러나, 겸양이 자기이해를 돕는다.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한계의 무게를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이 도전을 받고 있으며, 극복하고 초월해야 할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휘청거리는 사람은 이 투쟁 과정을 통해 온전해진다. 각각의 결함은 삶에 질서와 의미를 가져오는 전투를 벌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가 된다.

데이비드 브룩스, <인간의 품격> 中

인간은 휘청거리면서도 결함이 있으면서도 '겸양'이란 장치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얻는다. 조직이나 국가역시 그러해야 하지만, 개인이 조직이 되거나 국가가 되면 괴물이 된다. 개인의 품격은 향상될 수 있지만,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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