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066.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독서는 자신이 무지하단걸 깨치는 과정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4. 11. 29. 23:43

본문

독서는 읽을수록 나의 무지를 깨닫는다. 왜 이리도 모르는 게 많은지.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에 나와서 접하는 모든 게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알아가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내가 너무 모른다는 걸 점점 깨우치기에 기쁨과 슬픔의 혼합감정이 스며오른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G1을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맛처럼 머릿속에서 다양한 느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온몸을 누빈다.

 

콜럼버스가 존재했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듯 세상은 넓고 크다. 1924년 허블은 지구에서 안드로메다 은하가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의 바깥에 있다는 것을 밝혔다. 지구가 속한 은하계가 유일한 우주가 아님을 증명했다. 거대한 우주가 존재했음에도 알지 알지 못했던 영역을 발견했다 콜럼버스가 지구관을 확장했다면 허블은 우주관을 확장했다. 게다가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음도 밝혔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는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불가한 영역이 되었다. 우주 밖에는 신의 손이 있을지 무엇이 존재할지는 여전히 모른다.

 

영국에서 한 조사에 의하면 1m² 밀밭 땅속에 7만 5000개나 되는 잡초 씨앗이 있었다고 한다. 발 밑의 작은 땅 속에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씨앗도 알지 못한다. 인간은 지구 밖의 우주도 내 발 밑의 작은 땅 속도 모르는 존재다.

책은 읽을수록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얼마나 무지한가를 뼈가 시리도록 깨닫는다. 하루살이가 사계절의 시간과 100년을 사는 사람을 모르듯, 인간은 작은 것부터 우주까지 너무나도 모른다. 밤하늘의 별이 소멸한 별인지 아닌지 조차도 몇십 년이나 수십억 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거리임을 곱씹으면, 인간의 무지와 왜소함에 만물의 영장이란 단어가 사치다.

 

도서관에서 김미옥 저자의 《미오기傳》을 읽으며 그녀가 연간 800권을 읽고 800만 원을 도서 구입에 쓴다는 말에 왜소함을 체감한다. 독서는 독하게 해도 서생에 머무름을 깨닫는 순간이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곳곳에 머리를 숨기고 있다.

 

내 말은 맹렬하게 타는 불이다. 바위를 부수는 망치다. 나 主의 말이다 (렘23:29 새번역)

 

글자를 읽는다는 건 자신의 무지를 태우는 불이요, 의식을 깨치는 망치다. 읽으면 변한다. 시간과 양의 문제다. 읽는 행위는 채찍으로 자신을 내리치는 의식이다. 기존에 가졌던 관념에 새로운 불과 망치가 내려쳐지고, 무너지기도 새롭게 단단해지기도 한다.

 

그동안 몸속에 축적된 경험과 지식에 새로운 활자가 눈을 통해 한 번 들어오면 그동안 자리 잡았던 자아가 저항한다. 기존 관념 그대로 유지하면 뇌가 편안하고, 뇌가 편안하면 내 삶이 편안하다. 기존 관념에 활자들이 송곳처럼 계속 찌르기 시작하며 흔들리기 시작하면, 뇌는 새로운 네트워크로 재배열하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한다. 기존 관념과 새로운 지식의 크기가 임계치에 도달하면 새로운 지식과 경험이 기존을 대체한다.

 

외부의 활자가 불이 되고, 바위가 되는 순간이다. 옛것을 태워버리고 부수어버린다. 좋은 책은 좋은 사람을 만든다. 좋은 책은 추천도서에서 그 시간과 양이 쌓이면 자신만의 책을 고르는 법이 저절로 몸에 익혀진다. 데이터들이 쌓여야 지식이 되고, 비행기가 활주로를 일정기간 속도를 내고 달려야 하늘로 오르듯이 책 읽기도 절대적인 시간과 양이 필요하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고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있듯 책읽기도 활자가 불이 되고 망치가 되는 경험도 동일하다. 올림픽 선수들이 기본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듯 책읽기도 지난한 읽기와 졸기를 겪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게 자라는 것 같다. 돌아보면 훌쩍 커있는 나무들처럼. 책 읽기는 앉아서 고수들을 느끼고, 세계를 다니며, 우주로 나아가는 우주선처럼 멋진 탐험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