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칸딘스키는(Wassily Kandinsky)는 『점·선·면』이란 책을 통해 ‘점’은 공간 속에서 최소 단위의 시각적 요소로 침묵의 시작이자 모든 시각적 요소의 출발점이라 했다. ‘선’은 점이 움직이면서 생기는 흔적으로 방향성과 길이를 가진다. ‘면’은 선이 둘러싸면서 생기는 공간으로 추상미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자연을 묘사하던 회화를 근본부터 뒤 흔들었다.
그림은 점에서 출발해 선으로 이어지면, 선이 연결되면서 면을 이룬다. 스마트폰이나 TV화면의 출발점은 픽셀인 점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러 픽셀이 모여 이미지나 움직이는 영상을 보여준다. 중국의 덩샤오핑( 邓小平)은 점. 선. 면을 활용한 개혁개방을 주창하고 실행했다. 개방의 시작점으로 1980년대 초 선전, 주하이 등 경제특구를 지정했고, 이러한 점들을 연결해 상하이, 텐진, 칭다오 등 주요 항구도시를 연결한 후, 이러한 선을 확장해 연해경제개방구 등 동부연안에서 서부대개발 등 면적단위로 개방을 확대했다. 칸딘스키의 점·선·면이란 예술의 언어를 경제정책에 적용시켜 현재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하동군도 마을협력가들이 각 마을로 파견되어 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은 그 네 곳의 점들을 방문했다. 이러한 점들이 서로 협력하여 선들을 이루고, 선들이 연결되어 면을 이루어 마을자치가 가능한 마을 만들기를 할 수 있다. 마을 공동체가 참여해서 연대를 이룬 자생력이 있는 마을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
악양면 매계마을에서 교육생들은 마을 공동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옆에 있는 마을카페에서 차도 마셨다. 이어서 매계마을 이장은마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했다. 마을의 브랜드는 ‘성장하는 복지 매계마을’이다. 여기에서 성장이란 말은 단순한 외형적인 성장의 뜻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성숙해지듯 성숙이란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매계마을은 하동군에서도 모범적인 마을에 속한다. 마을에서 가구별 총 4천만 원을 출자해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62kW 태양광 발전소에 3,500만 원 투자해서 월 140만 원 정도의 수입이 발생한다고 한다. 단순히 이 수치를 기준으로 한다면 손익분기점은 3년 정도면 충분히 회수가 가능하며, 이후에는 이익이 발생하므로 가구별 배당도 할 수 있는 규모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장은 마을협력가의 역할은 현지인과의 갈등해소가 핵심이라고 한다. 이장보다는 뛰어나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시골일수록 폐쇄적인 사람들이기에 이들을 개방적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의욕적으로 마을호텔을 여러 곳 설치했는데 정화조 문제가 해결되어야 가능하며, 외부인들이 숙식할 경우 기존 마을사람들의 프라이버시 침해 및 관계 설정과 호텔의 수익을 마을과 어떻게 공유해야 할 건지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매계마을에서 활동하는 마을협력가는 마을 이장과 어깨를 맞추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옥종면의 한계마을이다. 마을 이장은 3년 차이며 신임 이장 이전에는 조용하고 한가한 마을이었다. 이장은 의욕이 넘쳐 비전과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지만 시골의 특성상 문서작업 등이 어려워 마을협력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한계마을에는 눈길을 끄는 자원들이 여러 곳 보였다. 거북모양처럼 새긴 바위인 구암대 위에는 고대인들이 하늘의 별을 바위에 하나하나 새겨놓았다. 마을 언덕에는 연리지 나무가 특이하게 자라고 있으며, 고려시대 고성산성 흔적이 남아있다. 이들을 스토리텔링으로 엮는다면 한가했던 마을이 한계가 없는 마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계마을에 파견된 마을협력가는 1년이 지난 시점 노인들이 처리하기 어려운 문서작업과 개인별 직불금 교육,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심부름 등 마을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중이다. 협력가를 하면서 시골생활에 대해 알아가고 있으며,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던 지역사투리에 대한 사전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둘러볼 곳이 네 곳인 만큼 다음 마을인 진교면 중심마을로 이동했다. 진교면은 교통의 요충지이며 중소기업이 산재해 있어 준도시처럼 젊은이들이 많은 곳이다. 중심마을은 의외로 변두리에 있는 달동네인 만큼 마을엔 이렇다 할 자원이 없었다. 게다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갈등의 골이 깊었다.
마을 협력가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갈등이 해소되었다고 한다. 좁은 골목길에 청년예술가들이 골목을 예술골목으로 꾸며 살아나고 있는 마을로 변화되는 모습이 보인다. 인간에 의해 최초로 멸종된 도도새를 캐릭터로 마을재생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둘러 적량면 난정마을로 이동했다. 낮 기온은 35도를 훌쩍 넘었다. 이장과 마을협력가는 마을초입에서 반갑게 맞이한다.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난정마을이 슬로건이라고 이장은 설명한다. 23가구 63명의 주소득은 농임산물이다. 농한기 짚신공예로 57년째 소득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귀향 10년 차이면서 3년 차인 이장은 하동군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어 3단계 진행 중이다. 하동군 마을 만들기 사업은 1단계에 선정된 경우 2천만 원, 2단계 5천만 원, 3단계 3억 원이 지원되며 선정된 마을은 기초생활 기반 확충, 마을 경관 개선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주민이 주도하여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여 자생력과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드는 사업이다. 마을협력가는 2024년 7월에 파견되었다. 마을에 다가가는 협력가의 태도가 중요하며, 서서히 주민과의 교감을 확대하고 마을행사에도 동참하여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오후 4개 마을을 동서남북으로 오가며 바쁘게 돌아다녔다. 공통점은 마을 이장의 마인드가 중요했다. 이장이 개방적일 경우 마을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외부를 향해 폐쇄적인 마을일수록 침체되며, 개방적일수록 마을은 변화의 가능성이 높다.자원이 풍부한 마을과 이미 자리를 잡은 마을, 자원이 없는 마을 등 다양한 마을에서 활동중인 마을협력가를 통해 주민들에게 다가갈려는 그들의 행동을 읽을 수 있었다.
마을협력가는 이장, 주민들과 함께 연대하여 마을을 만들어가는 점의 위치에서도 가장 작은 점이다. 그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면을 이루어 형태를 갖추는 것처럼 지역소멸이란 단어를 소멸시키기 위해 최전선에 서 있다. 면은 점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마을이란 단위에서 점들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될 때 모범적인 마을 살리기가 되지 않을까. 인생이 하루하루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그 선들이 모여 커다란 인생이란 면을 만들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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