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산골은 다른 모습으로 새벽을 깨운다. 요즘은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점령했다. 밤새 쏟아부었던 빗방울이 새벽만 되면 잦아든다. 사람들이 잘 때는 무서리치도록 비를 내리더니 아침이 되어선 수면모드로 잦아든다. 산골생활이 새로우면서도 단조롭다. 자연은 늘 새롭고, 인간은 항상 단조롭다. 정해진 삶의 패턴이 없으면 인간은 나태해진다.
매일 삶의 수고로움에 치이면 찌든 삶에 휴식을 바라지만, 무작정 시간이 주어지면 삶이 피폐해진다. 인생이든 자연이든 모순으로 얼기설기 이루어졌다. 결혼하면 자유를 꿈꾸고, 자유로우면 속박을 꿈꾼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필이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었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비가 오면 홍수를, 비가 없으면 가뭄을 걱정한다.
인생은 모순이란 동력으로 나아간다. 모순이 없다면 세상은 무중력 상태처럼 부유하지 않을까. 진자운동을 하는 추처럼 모순 역시 운동력을 가졌다. 가난하다고 불행하지 않고, 부자라고 행복하지 않다. 뚫지 못하는 방패와 모든 것을 뚫는 창을 파는 상인처럼 그 모순의 꼭짓점에 사람은 서있다.
인간은 에덴동산부터 모순이었다. 그러면 신도 선한 것만 만들면 되었을 텐데 악도 존재하니 모순일까. 사람이 악을 선택할 줄 알면서도 선악과를 만들었을까.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압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서며 모순은 해결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악을 선택하는 모순을 선택한다.
모순을 통해 인간은 살아갈 동력을 얻고, 성장한다. 식물이 추위와 바람, 빛과 어둠으로 성장하듯 만물은 모순 덩어리다. 악인은 부귀를 누리고 오래 산다. 선한 사람은 가난하고 단명한다. 이 또한 모순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인간 역사는 모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질문명은 최첨단을 걷고 있지만, 인간정신은 날로 걍팍해지는 것도 모순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삶은 모순 그 자체다. 아이러니한 건 모순이 삶을 자극해 살아내는 촉매제다. 죽음이란 끝점을 향해 째깍째깍 나아가는 희한한 모순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자신에겐 무한히 관대하고 합리화하지만, 타인의 사정에 대해선 냉혹하고 비판적이다. 이것 또한 모순이다.
자신이 모순 덩어리고, 세상이 모순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모순이 있기에 파고들 구석이 있고, 움직이는 공간이 생긴다. 스스로 창과 방패를 들고 모순에 봉착한 채 골목길 어귀에서 서성이는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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