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났던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 세상에 새것이란 없다" (전 1:9, 새번역)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는 ≪나의 문학수업≫이란 책에서 "내가 혼자서 만들어 낸 것은 내 소설의 어디에도 없다."라고 말했다.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은 ≪에디콜로지 : 창조는 편집이다≫에서 "창조란 유에서 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며,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편집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의 GUI 기술을 훔쳐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만들었고, 빌게이츠는 맥의 기술을 훔쳐 윈도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피카소가 그린 소의 연작도 1만 4000년 전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그려진 소를 모티브로 그렸다. 박수근 화백의 화강암 표면 같은 독특한 화풍은 신라시대 화강암의 질감을 가져왔다.
나는 일을 할 때 사람은 게을러져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게을러져야 일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고, 혁신적인 일도 가능하다고 강조하곤 했다. 반복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일을 없애지 못하면 단순화하거나 아웃소싱하는 방법을 찾도록 했다. 주어진 일에 부지런하기보다 최대한 게을러지기를 강조했다. 예를 들어 엑셀의 조건식과 선택적 데이터를 구분하는 기능들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복잡한 조건식과 데이터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다른 업무들도 관찰하면 얼마든지 없애거나 단순화 할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생각 없이 하다 보면 일이 자신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생각이 일을 이끌어야지 일이 생각을 이끌어선 안된다. 일을 없애고, 단순화하고, 자동화하면 게으름을 피울 시간이 많아진다.
게을러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생각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뇌 속에 생긴다. 게으름은 주어진 시간을 압축한다는 말이다. 압축한 시간만큼 창조적인 일에 할애하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해아래 새것이 없는 만큼 인류역사는 가수 전인권이 부른 "돌고 돌고 돌고"처럼 도돌이표처럼 진화해 왔다. 원시시대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던 시대에서 지금은 스마트 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진보했다. 진보는 기존의 것들을 조합한 편집의 과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말한 '창조는 편집'이란 말이 어울린다.
2022년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Chat GPT 열풍이 지금은 잦아들었다. GPT-3 버전이 지금은 CPT-4로 업그레이드되었다. OPEN AI의 Chat GPT는 여전히 2021년 9월 이전자료만 반영하고 있고 그림은 그릴 수 없다. MS의 Chat GPT-4인 bing은 대화를 통해 실시간 자료를 반영하며, 대화창에서 텍스트로 요청하면 그림까지 그릴 수 있다. Chat GPT를 통해 많은 영역에서 인간의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그 자료에 대한 검증은 전적으로 인간이 해야만 한다.
산골은 새벽닭이 홰를 치는 소리로 깨어난다. 밭일은 주로 새벽시간에 처리한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 되면 적막이 산골을 채운다. 20분 거리에 있는 카페와 식당은 오후 4시에 닫거나 길어야 7시면 문을 닫는다. 게다가 어떤 가게는 주중 이틀을 쉬거나 나흘을 쉬는 가게도 있다. 도시인이 방문하지 않으니 그만큼 여유가 있다. 도시처럼 24시간 6~7일 동안 분주하지 않다.
창조는 편집이고 시간의 여유에서 나온다. 시간의 여유는 부지런함 보다는 게으름에서 나온다. 게으름은 필요 없는 일을 없애고, 단순화 작업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창조는 게으름에서 나온다. 고로 게을러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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