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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책 피서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3. 8. 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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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무더위가 제철을 만났다. 아침부터 폭염경보 문자가 스마트폰을 진동시킨다.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를 걸으면 피부가 따가우면서 뜨겁다. 한 끼의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10분 정도 걸으면 몸은 통구이가 된다. 흡사 흡혈귀가 빛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여름 햇볕을 피한다. 장마가 끝난 여름거리는 하늘에서 따갑고 뜨거운 열화살을 지구로 마구 쏘아댄다. 햇살은 하늘에서 쏘아대는 화살 같아서 햇살일지도 모른다.

하동도서관 마당에는 네모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 귀퉁이에는 걸터앉은 소녀상이 있다. 소녀는 책을 무릎에 펼쳐놓고 턱을 괸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무더위와는 상관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허공에 앉아 있다. 도서관이나 책 관련 상징물을 보거나 명언들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뛴다.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는 것은 침묵의 대화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고 말한 작가인 찰스 램, '인간의 얼굴은 자신의 모든 비밀을 드러내는 한 권의 열린 책이다.'라고 말한 거리의 철학자 에릭 호퍼, '나는 행복을 찾아 모든 곳을 헤맸지만, 결국 어느 한 구석에서 책을 읽다 행복을 발견했다.'라고 말한 사상가 토마스 아 켐피스 등 책과 관련된 명언들은 많이 있다.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은 이야기는 중국의 문학가인 린위탕(林語堂)이 남긴 일화다.

林语堂说 : "只有苦中作乐的回忆, 才是最甜蜜的回忆。" 他们即使穷得没有钱去看一场电影, 也要去图书馆借回一摞书, 两人守着一盏灯相对夜读, 其乐不改。大师说, 穷并不等于"哭"。世俗所谓的"贫穷夫妻百事哀"的逻辑, 完全被他推翻了。

린위탕은 말했다. "오직 고생 중에 즐거움을 누렸던 기억이 가장 달콤한 기억이다." 그들 부부는 영화 한 편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한 꾸러미 빌려 등잔불 아래 밤새 책을 읽는 즐거움은 변함이 없다. 빈궁함은 결코 "고통"이 아니다.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부부에게 모든 것은 슬픔이다"라는 말은 그에 의해 완전히 뒤집혔다.

나이 들수록 남자는 여자 친구를 원하고, 여자도 여자 친구를 원한다. 나이 든 남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집에선 강아지만도 못한 서열로 내려앉은 나이 든 남자의 현실이다. 젊어서는 원하는 대로 가고자 하는 곳을 누볐지만, 나이 든 남자는 교미가 끝난 수컷 사마귀처럼 목숨까지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래서일까... 독서에 점점 몰입하는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간다. 무엇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그저 책을 읽는 게 행복해서다. 책을 읽으면 사람과의 대화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책을 읽는다는 건 저자의 이야기를 머리로 듣고, 소화하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과정이다.

종합자료실 창가 책상에서 바다가 보이는 영도 도서관

하동 도서관이 보유한 책은 9만 1천여권이다. 부산에서 자주 가는 영도 도서관의 16만 3천여 권보다 훨씬 적은 책을 보유하고 있다. 하동에 없는 책은 경남도내 공공도서관에서 무료로 빌려보는 상호대차 제도가 있지만 연간 20권으로 제한된다. 20권은 3개월 분량밖에 안 된다. 영도는 상호대차권수에 제한이 없다. 도시에선 책을 읽는데 한계점은 없다.

시골이 영화나 공연 등 문화시설이 부족한 것은 이해한다. 도시와의 문화 간격을 좁힐 수 있는 부분이 그나마 책인데, 책마저도 도시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불화살을 피해 시골의 하동도서관으로 간다. 책은 거절할 줄 모른다. 그저 거기에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시골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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