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속한 휴일은 독서를 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도서관에서 읽지도 못할 과도한 분량의 책들을 빌려 한켠에 쌓아둔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다 읽은 포만감이 든다. 책을 빌릴 때는 다 읽을 것 같은 희망으로 부풀지만 연휴가 지나는 시점에 돌아보면 역시나 쪼그라든 변명이 된다. 변명은 지금껏 100전 100승 완벽한 승리를 누리고 있다.
거실 TV도 치웠다. 책상과 독서용 소파, 그림 2점, 곳곳에 쌓인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너튜브에서 베토벤 현악 4중주를 나만의 배경음악으로 흐르게 한다. 독서를 하기엔 부족함이 1%도 없는 환경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모음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읽기에도 부담 없는 얇은 책이다. 1시간 남짓 집중하면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제법 흥미로운 내용들이다.
정작 소설을 읽는데는 이틀이 걸렸다. 읽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 과자를 먹는다. 집중하려고 하면 잠이 어김없이 쏟아진다. 인스타와 틱톡은 잠시만 보는데도 40분은 훌쩍 지나간다. 책은 그렇지 않다.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잠이 내려 누르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깃털처럼 가벼운 눈꺼풀의 중력을 버틸 수 없다.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 집중이 오히려 잘된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집중력은 올라간다. 백색소음이 반대로 집중력을 올린다는 ‘카페효과’때문이다. 집과 도서관은 소음이 차단되었지만 몇 줄 안 읽으면 잠이 쏟아진다. 소음이 없는 곳은 내 몸도 소음이 없는 잠으로 흡수된다. 웬만한 스피디한 내용이 아니면 잠의 블랙홀에 갇히고 만다.
뇌는 낯선 곳에서 긴장한다. 거실은 편안한 공간이기에 긴장하지 않는다. 한센병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몸이 떨어져 나가도 알 수 없다. 긴장과 고통은 밤과 낮처럼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남자와 여자처럼, 시소의 양끝처럼 연결되어 있다. 일이 없는 세상, 24시간을 오롯이 자신이 주인되는 시간이라는 환상이 지옥이 되는 것처럼 세상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극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자극 없는 삶은 고통이 되는 역설이다. 적당한 자극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메기효과’처럼 자신을 자극하는 환경에 뇌를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여행을 가는 것도 뇌를 낯선 곳에 던져놓기에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외부로 여행을 가지만 정작 자신의 뇌를 찾아 떠나는 자기 안으로의 여행이다.
사람은 타인의 눈을 의식한다. 혼자있을때는 긴장하지 않지만 타인과 있을 때는 긴장한다. 독서도 혼자하기 보다는 카페에 앉아있는 게 훨씬 집중력이 올라가는 이유다. 카페에 무한정 앉아있을 수도 없기에 한 잔 정도 마실 수 있는 한정된 시간에 가두어 두면 뇌는 제한된 시간에 최대한의 경제적 선택을 한다.
사람은 자유를 꿈꾸지만 자유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인간이란 동물의 유전자는 그렇게 살 수 없게 진화되어 왔다. 그래서 천국이 살짝 걱정이 된다.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창조주와 함께 하는 즐거움과 기쁨만이 있는 삶이... 무한한 고통이 있는 지옥보다는 나쁘지 않은 환경이겠지만...
사람은 속박이 없으면 집중하기 어려운 동물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까? 중국 전중수(钱钟书) 작가의 『围城』란 소설에 “성안에 있는 사람은 나가려고 하고, 성밖의 사람은 들어오려고 한다(城外的人想进去,城里的人想出来)”라는 문구가 있다. 사람의 욕망을 적확하게 묘사한 문장이다. 결혼이든 직장생활이든 결혼한 사람은 벗어나길 원하고, 직장인은 직장밖의 자유를 원한다. 미혼남녀는 결혼을 미취업자는 직장을 원한다.
인간이란 동물에게 속박은 필요악일까? 거실에서 쏟아지는 잠을 유발하는 책을 덮어버렸다. 버스를 타고 별다방(starbucks)으로 간다. 호텔 로비에 있는 별다방에서 시럽 뺀 말차라떼를 앞에 두고 수면제를 유발하는 책을 펼친다.
나방이 눈물을 마신다. 눈물을 마시는 나방은 라크리파고스, 인간의 살을 파먹는 종은 안트로포파고스라고 한다. 우리는 늘 슬픔을 먹고 산다. 그것이 아름다운 서정시와 대중가요의 본질이며, 슬픔과 상심이 그렇게 달콤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감정,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과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위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 레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중
슬픔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이다. 슬픔을 겪은 자만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상처가 공감으로 승화한다. 이 세상 모든 슬픔의 결말은 비극이 아니다. 행복을 심는 깊은 씨앗이다. 책이란 세상속에서 뇌는 경험과 문자가 결합하여 각성한다. 집에서 책을 읽지 않고, 카페에서 책을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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