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산골은 4월 중순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아름들이 나무밑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잎들이 바람을 포집해 저마다 일렁이며 내는 바람의 합창은 절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쏴아아 쏴아아 바람이 잎을 이용하는지, 잎이 바람을 이용하는지, 파란 하늘에 점점이 리듬을 타는 잎들의 공연이다.
잎들이 흔들거리며 쏟아내는 소리는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낸다. 정수리부터 성령이 정수리를 뚫어 뇌에 들어온다. 몸 전체를 훑으면서 절로 입술 끝을 귀밑까지 끌어올린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처럼 이 순간만큼은 절대 행복감으로 충만한 산골이다.
바위를 배경으로 자리를 잡은 민들레 홀씨가 백발로 성성하고, 온 밭이 민들레 폭죽이 펑펑 터지는 봄의 팡파르가 천지에 충만한 시기다. 듬성듬성 잔디가 하루가 다르게 녹색 양탄자로 뒤덮인다. 서로 경쟁하듯 온갖 잡초와 꽃들이 서둘러 생존하기 위해 경쟁하듯 온 동서남북에 봄이 화산처럼 폭발한다.
봄을 멀리서 바라보면 산아래부터 위로 녹색 생명이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올라가는 게 보인다. 고도가 높은 능선은 여전히 회색빛이다. 하루가 다르게 정수리까지 녹색이 번져 올라가는 게 보인다. 산아래 노란 꽃이 지면, 흰색들이 봄을 채색한다. 산벚꽃이 버짐처럼 듬성듬성 산허리에 점을 찍고는 푸른색으로 갈아입는다.
담장아래 수북이 쌓인 복숭아 꽃잎, 마당 입구에 자리 잡은 금낭화, 하얀 꽃을 피운 산딸기, 빨간 앵두가 되기 위해 녹색으로 영근 앵두 열매들, 오디나무도 자그마한 녹색 열매들이 점점이 달렸다. 아스팔트 금이 간 곳에도 녹색 생명이 힘차게 밀고 나오는 시기다.
처마 밑에도 동면에서 깨어난 거미가 집을 지었다. 식물이 깨어났으니 이제 서서히 벌레들도 번성할 것이다. 집 안에 벌레들이 들어오고, 처마밑은 하루살이들이 분주해질 것이다. 봄은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순간 성숙한 여름으로 들어간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풀들에 놀란다.
생명을 이어가려는 끈질김과 앞다투어 먼저 번식하려는 생명들의 서두름이 시간마다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 소나무가 뿜어대는 송진가루는 봄 하늘을 뿌옇게 만든다. 아침마다 차의 표면과 유리창에 수북이 내려앉는 것도 치우는 게 일이다. 벌들도 부지런히 꿀을 모으기 위해 날면서 배설물을 차의 곳곳에 흔적이 남는다.
눈은 생명이 왕성하게 일어나는 즐거움으로 행복하지만, 아침마다 벌똥을 닦아내고, 송진가루를 쓸어내는 귀찮음과 어느 틈엔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벌레들이 성가신 건 덤이다.
새벽이면 산골 사람들은 고사리를 꺾은 마대자루를 두 어깨에 짊어지며 산에서 내려온다. 두릅도 가득가득 채우는 바쁜 시기다. 시큼 상큼한 산나물로 입안이 화사해지며 식탁도 봄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올초 이상기온으로 고로쇠 수액채취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들 한다. 산골은 이제 서서히 바빠지는 시기로 걸어 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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