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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시간의 여백

일기/유유적적(裕裕寂寂)

by 풀꽃처럼 2026. 9. 1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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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경주를 다녀왔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니 여유롭게 약속을 잡고 서두르지 않게 문을 나선다. 아이들 교육비는 완납했고, 이제 다들 결혼과 손주 소식이 화젯거리다. 40대부터 시작한 그의 그림 취미는 어엿한 화가로 변신했다. 이전에는 선이 끊기듯이 짧게 짧게 이어졌는데, 지금은 한 획으로 시원하고 날렵해졌다. 김홍도 풍에서 신윤복 풍으로 진화한 것 같다.

인생은 삶이란 도화지에 성장, 취업, 결혼, 육아, 교육, 자녀 독립 등으로 채우는 과정이다. 중요한 키워드를 그렸으니 이제 여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그가 공동 운영하는 갤러리카페를 방문했을 때는 수강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귀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강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서로 비워두었던 시간이란 항아리에 두런두런 얘기들로 채운다. 취미로 시작한 그리기는 장년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다른 친구는 시인이 되었다.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밀양에서 농부가 되어 텃밭을 일군다. 닭도 키운다. 가까운 벗과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갤러리카페, 시간의 여백

여백(餘白)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자리’다. 서양화가 캔버스를 꽉 채웠다면 동양화는 여백이 그림을 말하게 한다. 마음에도 여백이 있다면, 상대방으로부터 불쾌함을 느꼈을 때 넘치지 않는 공간이 생긴다. 내 마음이 호수라면 돌 하나 떨어져 파문이 일더라도 잠잠해진다. 양동이라면 물이 넘쳐버렸을 것이다.

수도승 등 구도자들이 쉽게 화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그만큼 여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백은 다른 것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두는 것이다. 자존심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선 마음의 여백을 넓혀 두어야 한다. 바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의 여백을 두어야 하는 것처럼.

그동안 살아왔던 궤적이 여백을 빽빽이 채우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여백을 확장하는 시간이다. 캔버스 위에 비워둔 여백이 말하게 해야 할 시간이다.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한 시간의 여백이다.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을 여백을 두고 싶다.

하늘의 여백

24시간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에서 벗어나 산골로 다시 들어왔다. 여백으로 풍성하게 채워지고 비우는 자연으로 돌아왔다. 그릇은 채우는 공간이면서 비워두면 채움이 쓸모 있게 되는 도구다. 채우기 위해선 비워야 한다. 도시에선 채우며 살았다면 산골에선 비우는 삶의 지혜를 깨치는 시간이다. 

산골에 오자마자 묵밭을 일구었다. 아카시아 뿌리줄기가 땅속에서 끈끈하게 자기만의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청년회 총무가 트랙터로 로터리 작업을 했다. 전지가위로 뿌리를 잘라냈다. 그럼에도 삽은 땅속을 파고들기 힘들다. 군데군데 드러나는 나무뿌리들이 온몸의 땀을 흐르게 한다.

고랑을 깊이 파면서 두둑을 높게 올린다. 가을무 모종을 심기 위해 고랑을 세 곳 만들고 두둑에 하나씩 옮겨 심었다. 가을무는 9월 15일까지 심어야 한다. 두둑을 두껍게 하고 물을 듬뿍 준다. 사람이 배짱이 두둑하다고 할 때 그 두둑이다. 눈으로 두둑을 확인하며 단어를 삼킨다.

오늘 가을무 모종을 심고, 점심을 먹으면서 농사에 대해 한 수 배운다. 봄에 퇴비를 주지 않았기에 땅으로 자라는 뿌리 부분과 위로 자라는 부분에 농약을 보충해야 한다. 식물의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도록 북을 돋우어야 한다. 잡초도 제거하고 식물도 튼튼하게 하는 작업이다. 사람도 식물처럼 북돋워 줘야 한다.

식물은 태양과 산소, 물, 흙이 있으면 살아간다. 이동하지도 않는다. 효율적인 공장이자 생명체다. 지혜롭다고 뻐기는 인간은 움직여야 한다. 인간이 식물보다 진화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자연은 관찰하고 겪을수록 다양성을 인정하며 차별하지 않고 공생하는 네트워크다. 사는 곳이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명품이 규정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다.

곰팡이들은 숲속에서 강한 힘도, 굉음도 없이 평화롭게 그 일을 수행한다. 그들이 만들어 낸 무기물을 다른 생물이 사용할 수 있게. 곰팡이는 분명 분해자를 넘어 자연을 순환시키는 환원자다. 그들은 사라짐의 진정한 미학을 알고 있다.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신혜우, 한겨레출판, 2025)

곰팡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인식되지만, 자연을 순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쓸모없는 것처럼 인식되나 유익한 존재다. 자연에선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다. 

느헤미야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페르시아 왕국의 안정적인 관직을 버리고, 식민지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아 올렸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잡는 과정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반대 세력의 방해도 극복한 후 성벽을 완성한다. 외적인 권력과 명예보다는 공동체의 회복을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았다.

젊은 날, 느헤미야처럼 살기를 다짐했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의 수레바퀴 밑에 깔린 삶이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과 공감하며 무너진 성벽에 벽돌 하나 올리는 심정으로 살아야겠다. 자연에서 보이지 않는 곰팡이처럼. 식물처럼. 자연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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