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7(월)
14코스 19.1km. 한림항 ~ 금능 해수욕장 ~ 월령 선인장 자생지 ~ 무명천 산책길 ~ 큰소낭 숲길 ~ 저지예술 정보화 마을
제주올레가 벤치마킹 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2010년 방문자 수는 27만명, 2013년 21만명인 반면, 올레길 탐방객 수는 2013년 119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4년 117만명, 2016년 68만명, 2018년 57만명으로 감소했다. 근래 제주올레 방문객이 줄어들고 있어 올해 5월부터 100km 완주증을 새로 만들어, 부흥을 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주올레의 성공적 안착은 전국 지자체의 둘레길 만들기 열풍을 일으켜, 지금은 산과 바다 등 거의 모든 알려진 장소에는 둘레길이 유지되고 있다. 제주올레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하나가 대한민국 곳곳을 걷기 위한 오솔길과 바닷길을 열었다.
오늘부터 걸어야 할 올레길은 서부권에 몰려 있다. 동부의 성산에서 접근하기 위해선 많은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100번대의 급행버스, 200번대의 간선버스, 700번대의 지선버스를 갈아타기 위해선 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올레길의 전반전이 길 위의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인 오늘부턴 길 위의 기다림의 시간이다. 다행히 어플리케이션 '카카오맵'에 제주버스의 실시간 위치가 표시되기에, 무작정 길 위에서 시간을 허비하기 보단, 기다리는 시간 동안 허기를 채우거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또 다른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제주도의 해안에 분포되어 있는 용천수는 현재 모습만 남아있고, 몇몇 이용하고 있는 곳을 제외하곤 관리가 거의 되지 않아 점점 흉물스런 모습이 되어 간다.
제주도의 대문인 정낭(錠木)은 운치있어 보인다. '낭(木)'은 제주도 말로 나무란 의미고, '정(錠)'은 더미란 의미이며, 3개의 나무를 정낭이라 부른다. 정낭에 인접한 길이 올레이니, 올레와 정낭은 바늘과 실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가로 3개의 막대기 형태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1개만 걸쳐 있으면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3개일 경우 저녁쯤 돌아온다는 의미로, 2개는 그 사이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늘어진 강아지의 모습에서 걱정은 전혀 없어 보인다. 길 위에 나그네 만이 부럽게 바라볼 뿐이다. 인간이란 굴레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처럼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찾아떠나기 위에, 보이는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의 여정이다. 비 온 뒤 파도는 제법 거칠게 마음 속 바다에 상념의 높이를 같이 몰아 부친다.
월령리 선인장 군락은 국내에서 유일한 선인장 야생 군락지다. 마을 안내판에 의하면, 선인장 씨앗의 원산지인 멕시코에서 해류를 타고 이 지역에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월령리 주민들은 뱀이나 쥐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돌담옆이나 위에 선인장을 심었다고 한다. 인근에 풍력 발전기가 있어 제주 하늘이 맑을 경우 멋진 포토존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오늘은 숲길을 여러군데 지나왔다. 무명천 산책길, 월령 숲길, 굴렁진 숲길, 오시록헌농로, 큰소낭 숲길 등 제주의 우거진 숲들을 지나왔다. 숲길을 지나치면 나오는 농로는 전형적인 올레길이라 할 수 있다. 한 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판자촌의 골목길처럼 검은 현무암의 흙과 자갈길은 제주만의 특색이리라. 오늘은 가히 사색의 길이라 할 만하다.
오늘 코스의 주요 작물은 돌담 위와 주위에 철조망처럼 심겨진 선인장이다. 14코스는 19km란 상당한 거리인 만큼, 마지막 구간에서 만난 '그래도 힘을 내!!!'란 문구에 풀어졌던 다리근육에 마지막 분발을 촉구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
좋은 책 읽고, 기도하고,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참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공지영,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지영의 소설이 내 눈엔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맞춤 정장처럼 편안한 글로 다가온다. 조정래 작가의 핏발을 끓게 하는 뜨거운 문장처럼은 아니지만, 때로는 눈물을 쏟게 하고, 때로는 의분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잔잔한 기록물처럼-물론 아닌 책들도 있기도 하지만-귀에 속속 들어오며, 내용은 불편할지라도 편안히 들이키는 음료수처럼 자연스럽기에 필히 장만해 두는 그런 책들이다.
젊은 날 모나고 이기적으로 살았던 삶들이 여전히 고개숙인 벼처럼 부드러워 지지 않지만, 책 읽고 사색하고 현실에 수긍할려는,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죽음앞에서 빨리 결정짓는 모습 앞에, 흙으로 돌아가길 준비하는 여느 토기처럼 매일매일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나이들수록 모난 돌이 부딪히며, 부드러워 지듯 공지영 작가의 글들도 순해지는 것 같다. 나이에 맞게 편안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녀 답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의 아픔을 통해 공감을 하는 그런 책들이 기다려진다.
제주올레 19일째 14-1코스, 숲의 바다(The sea of trees)를 지나고 (0) | 2021.05.19 |
---|---|
제주올레 18일째 18-1코스, 추자도의 하늘은 푸르렀다 (0) | 2021.05.18 |
제주올레 16일째 7-1코스, 계획엔 없었지만 비 덕분에 엉뚱한 엉또폭포로 (0) | 2021.05.15 |
제주올레 15일째 15-B 코스, 나이들수록 원색이 좋아져 다행인 줄 알았는데... (1) | 2021.05.14 |
제주올레 14일째 16코스, 하늘색과 바다색을 구분할 수 없는 제주바다를 보며 (0) | 2021.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