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5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저는 선생님의 학덕(學德)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산청의 덕천서원(德川書院) 강당인 경의당(敬義堂)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서원 앞을 덕천강이 유유히 흐릅니다. 그 세월의 길이 만큼 강물도 굽이 굽이 흘러 바다로 갔겠지요. 선생님의 학문과 삶이 일치된 실천적 성리학도 세월이 흘러 흘러 넓은 세상으로 퍼졌습니다.
선생께선 사림의 영수로 나라에서 여러 번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거절하시고, 61세에 산천재를 지어 후진을 양성하셨습니다. 후학의 개성과 자질에 따라 학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중시한 교육철학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생 동안 선비의 삶을 지키며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며 폐단을 지적하고 개혁할 대안을 제시하셨지요. 사회를 비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세태를 비추어 보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한 선생님의 가르침에 부끄럽습니다.
경의당의 대청마루에서 눈을 감아 좌우에 서있는 동재인 진덕재(進德齋)와 서재인 수업재(修業齋)에서 선생님의 선비정신을 배웠을 유생들의 낭독 소리와 발걸음에 귀를 기울입니다. 선생님의 후학들은 임진왜란이란 국가적 위기에 분연히 떨쳐 일어난 경상도 3대 의병장인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을 포함한 50여명이 의병장으로 활동했었지요. 선생님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 중 저는 ‘칼 찬 선비’란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닌 학문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고, 현실을 개혁하는 실천적인 삶을 살았던 학문 말입니다.
율곡 이이도 ‘선비의 지조를 끝까지 지킨 이는 남명 선생 뿐이라’ 하셨지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이쪽 저쪽 자리를 기웃거리는 지조없는 세태에 선생님의 가르침 하나하나는 허투루 흘러내리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사상은 가슴 가슴에 내려 앉아 현대인들의 병든 의식에 죽비처럼 내리칩니다. 지금 덕천서원의 바로 옆엔 덕산 중학교와 덕산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자라나는 어린 후학들에게 마르지 않는 선생님의 사상이 덕천강 물줄기처럼 흘러서 훗날 사회를 개혁하는 실천적 지식인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오늘도 덕천서원의 강당인 경의당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가 갑니다. 덕천서원 길 건너의 세심정(洗心亭)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세심정 옆에 있는 선생님의 욕천(浴川) 시비(詩碑)에 새겨진 글귀 앞에 섭니다. 塵土倘能生五內(티끌이 혹시라도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刳腹付歸流(지금 당장 배를 갈라 물에 흘려보내리라). 섬뜩한 선생님의 기개 앞에 부끄러운 후손이 깊이 깊이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다시금 세상속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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