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후스는 프라하의 베들레헴 성당에서 주임사제로 재임할 때부터 선구적인 모습을 보였다. 후스는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대중에게 친숙어로 체코어로 강론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1402년). 그는 성서를 체코어로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후대의 종교개혁가들은 후스의 이러한 행적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루터와 후스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다행스럽게도 루터 곁에는 쿠텐베르크가 만든 금속활자가 있었다. 루터는 활자라는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금속활자로 인쇄된 글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온 세상에 널리 알렸다.
백승종, <도시로 보는 유럽사> 체코의 프라하 中
평소 체코 프라하는 언젠가 한 번은 꼭 들러보고 싶은 도시였다. 한 두달 정도 머물면서 느릿느릿 프라하에 물들고 싶었다. 새벽시장과 오후의 한가로운 강변, 골목의 이발소와 현지인이 머무르는 식당을 거닐고 싶었다.
후스 당시에는 대중적인 매체가 없었지만, 루터의 경우에는 금속활자 덕분에 저렴하게 다량의 책이 출판할 수 있게 되어 종교개혁을 더욱 촉진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1415년 후스는 결국 로마 카톨릭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고, 이를 계기로 후스 전쟁이 발발했고, 이 전쟁때 목숨을 잃은 개신교 신자들의 해골과 뼈로 장식된 해골성당이 프라하에서 70km 떨어진 쿠트라 호라에 위치하고 있다(https://news.joins.com/article/23602828). 혁신은 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아프지만 혁신을 통해 세상은 구체제에의 악습에 저항하면서 진보한다.
이 책에는 18개 유럽 도시가 짧게 소개되어 있으니, 소개된 곳 중 관심있는 도시의 역사를 더 찾아본다면 좋을 그런 안내서 역할을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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