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현실의 삶만 본다면 허무하고 비참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어려서는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야생꿀로 연명하고, 성장해서는 사람들에게 죄에 대한 회개의 표식으로 물로 세례를 주는 주요 인물이 된다. 회개를 하러 강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을 보고선 “악마의 자식들”이라고 거침없이 몰아세운다.
로마의 식민지를 수탁해서 통치했던 헤롯의 부도덕을 지적해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저녁 연회시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소녀는 춤을 춘다. 그 소녀는 헤롯의 부도덕한 대상자인 여자의 딸이다. 춤의 보상으로 소녀는 엄마의 지시대로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다. 요한은 재판절차도 없이 감옥에서 즉시 처형되어 머리가 쟁반 위에 올려져 소녀에게 주어지는 허망한 죽음을 당한다.
세례 요한은 구약 최후의 예언자였다.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예수를 드러내는 첨병 역할을 담당한다. 요한은 천사의 예언에 의해 태어난 선택받은 사람이다. 소년기에는 광야에서 훈련을 했다. 제사장의 아들로 사회적 권위를 누리는 자리에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서 메시아 예수의 등장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는다.
세례 요한 역시 감옥에 갇혔을 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 “오실 분이 선생님입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는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늘 확신에 찬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1503~1506)에 머무른 시기에 <세례자 요한>을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세례 요한은 피렌체의 수호성인이며 피렌체의 세례당 이름도 성 요한 세례당이다. 그림에서 요한은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미소를 짓고 있다. 내 다음이 구세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자신은 2인자로서 비껴서 있는 삶이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드러나고 싶어하는 경향이 짙다. 어느 모임에 가서도 겸손하게 뒤에 머무르기보다는 자리의 주인공으로 소개받거나, 주요한 인물로 인사받기를 원한다. 세례 요한은 천사의 예언으로 태어나서였을까 철저하게 2인자의 자리를 확고히 한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는 이는 불로 세례를 줄 것이다”라고 명백히 선언한다. 물은 땅에서 주지만, 불은 하늘로부터 라며 검지를 위쪽으로 향하고 있다.
철저하게 2인자로 살았고, 죽음은 너무나도 허망하게 죽었다. 제사장의 아들이었지만 광야로 내려갔고, 예언받은 대로 진리를 외쳤다. 권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거침없이 진실을 말했고 권력자에 의해 수감되었고, 재판절차도 없이 허망하게 처형되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다.
오늘도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며 인정받기를 원한다. 낮아지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도시도 그렇지만 인맥의 촘촘한 그물로 네트워크가 형성된 시골은 더욱 그렇다. 시골의 학력은 도시보다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공부를 열심히 한 시골사람은 대부분 도시로 떠났다. 시골이 싫은 사람도 떠났다.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금 보이지 않는 서열이 생긴다. 세례 요한처럼 스스로 2인자로 철저히 물러앉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일요일마다 이 땅에 울려 퍼지는 목사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정작 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하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교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지만 정작 삶에선 그렇지 못하다. 나는 더욱 그렇다). 세례자 요한처럼 가난하게 살았던 선지자처럼 개척교회는 끼니를 걱정하지만, 대형교회는 주위의 교회들을 질식시킨다. 2023년 한국리서치 ‘2023 종교 인식 조사’에서 한국 개신교의 호감도는 불교(52.5), 가톨릭(51.3)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3.3점으로 나타났다. 목사, 장로, 장립집사, 집사, 서리집사는 조직의 위계질서처럼 된 지 오래고, 권사는 교회에서 남자 옆에서 비껴서 있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세례자 요한>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내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땅이 아닌 하늘의 명에 따른 진짜 주인이 온다고, 내 뒤에 올 사람을 위해 자신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요한의 미소는 너의 존재이유는 무엇이냐며 야릇한 미소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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