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수명을 다하면 달리다가 죽는다. 날아다니는 중간에 툭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 며칠 전 마을의 진돗개 ‘지산’이가 죽었다. 첫 만남에서 격렬하게 짖어대던 개였다. 서로 자주 마주치면서 차츰 그 짖어듬도 잦아들었고, 격하게 몸을 부비며 즐겁게 뒹구는 사이가 되었다. 날카로운 닭뼈도 가볍게 우두둑 씹으며 소화했던 개였다.
한 번 나를 향해 뛰어들면 몸이 뒤로 물러날 정도로 기운찬 개였다. 격하게 자신의 몸을 부대끼고 침을 아무렇지 않게 옷에 묻히곤 했다. 앞 발이 다리에라도 닿으면 바지가 흙으로 가득할 만큼 발도 큰 개였다. 간식을 주는 날은 더욱 환하게 달려들던 아이였다. 그런 녀석이 얼마 전 만났을 때는 힘도 없이 제집 안에만 머물렀다. 사료도 먹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그냥 아픈 줄 알았는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2년이나 살다가 일주일정도 조용하더니 잠잠해졌다. 아픈 기색은 잠시였다. 사람처럼 연명하기 위해 기를 쓰지 않았다. 사람은 아파서 병원에 가면 나오기가 어렵다. 일단 중환자실에 입원하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연명치료가 이어질 경우 언제까지 환자와 가족이 고통받을지 알 수 없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연장된다.
지산이는 그저 제 몸에 일어난 변화를 따라 흙으로 돌아갔다. 동물의 죽음은 깨끗하다. 벚꽃이 순식간에 지는 것처럼 그렇게 제 몸을 부수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살다가 호흡이 멈추면 죽는 단순한 삶이다. 살기 위해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늙으면서 불멸을 꿈꾼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집착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만이 죽음에 저항한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란 인류(anthropos)와 시대(cene)의 합성어다. 인류로 인해 빚어진 지질시대라는 뜻이다. 지질시대는 최초 육상동물이 등장한 고생대, 공룡 등 파충류가 번성한 중생대, 포유류가 번성한 신생대로 구분한다.
현재는 1만 1,700년 전 빙하기가 끝난 후 신생대 제4기 홀로세라고 한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인구는 79억 명이다. 농업혁명에 따른 비료의 사용은 79억 명이 생존하기 위해 엄청난 양이 사용되고 있으며, 플라스틱 입자들이 광범위하게 지층에서 관찰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와 우리가 기르는 가축의 무게가 포유동물과 조류 전체의 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6~99퍼센트입니다. 이런 반전은 일찍이 지구 역사에 없었습니다. 불과 1만여 년 전 우리가 1퍼센트 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를 1퍼센트 남짓으로 줄여버리고, 우리가 완벽하게 지구를 정복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야생동물 몸에 붙어사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어느 날 좁아서 못 살겠다고 이주하면 거의 99퍼센트가 호모 사피엔스 아니면 호모 사피엔스가 기르는 동물이라는 겁니다. 지금 우리 시골에서 늘 겪고 계시잖아요. 조류독감. 우리 십몇 년째 해마다 겪고 있습니다. 드디어 우리도 당하기 시작한 겁니다. 생물다양성의 불균형이 너무나 극심해졌습니다.
- 최재천, 『최재천의 곤충사회』中, 열림원(2024)
양계닭은 전 세계 조류보다도 많다. 가축의 뼈도 인류세의 뚜렷한 흔적이다. 인류가 지구의 최고 포식자로 자리 잡으면서 인류가 지구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각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것도 평소에는 접촉할 수 없었던 생물들이 인류와 접촉하면서 발생했다.
기원전 2억 5,100만 년부터 기원전 6,600만 년까지 번성했던 공룡은 지구에 떨어진 운석으로 멸종한 설이 유력하다. 운석의 충격으로 대기가 급속하게 변했고 지구의 지배종이었던 공룡은 멸망했다. 인류세인 지금은 지구를 위협하는 것은 외부가 아니라 땅을 딛고 살고 있는 인류다. 농업혁명은 인류의 번성을 가져왔고, 산업혁명은 기술의 발전으로 삶이 풍요로워졌지만 결과적으로 환경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다.
인류세가 인류의 공통적인 책임이라면 스웨덴의 안드 레아스 말름(Andreas Malm) 교수는 인류세가 서구 중심 시각에서 다듬어진 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인류 전체의 문제로 만드는 인류세 대신, 인류세를 초래한 선진 자본주의 주체를 명시한 자본세(Capitalocene)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아무도 비난받지 않게 된다’는 뜻이 함의된 인류세보다는 인류세를 초래한 원인이 자본주의, 특히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해서 부강한 나라가 된 국가들의 책임이라고 개념을 특정화시킨다. 인류의 위기는 독점 자본주의 초과이득을 누린 서구중심 자본주의이며, 그중에서도 상위 1% 자본가에 책임을 집중해야 한다. 1%의 재산을 위해 인류 대부분은 희생당하고 있다. 한국도 상위 1%가 전체 사유지의 51.5%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자본주의 부의 불평등은 심각하다.
동물은 농업혁명도 산업혁명도 일으키지 않고, 그저 달리다가 죽고 날다가 죽는다. 오직 인간만이 혁명을 통해 지구의 지배종이 되었고, 그 위기의 칼끝은 이제 모든 인류를 가리키고 있다. 그 책임은 오늘날 G7이라 불리는 서구중심 자본주의 국가이며, 그 국가에서도 상위 1%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 혜택은 여전히 상위 1%가 자본의 힘으로 누리고 있다.
동물은 힘으로 서열을 정리하지만, 인간은 자본이 서열을 결정한다. 자본이 지구의 최강자다. 그 자본은 서구에 집중되어 있다. 자본의 특성은 거대화되면 불로소득으로 더욱 부자가 되는 사악한 시스템이다. 지구를 인간이 차지하면서 지금 곳곳에서 신음을 앓고 있고, 그 피해는 제3세계 국가와 가난한 인민들이다.
동물처럼 뛰다가 날다가 깔끔하게 죽음에 이르는 것도 지구를 살리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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