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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책벌레들의 공통점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4. 6. 2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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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두아르)는 그저 앉아서 주구장창 읽으며 뭔가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며 감탄하고 동감하며 울고 웃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풍요롭게 만든다. 스스로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삶. 절대 깨지지 않는 내면의 단단한 풍요로움으로 무장한 그는 진정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이주영, 나비클럽, 2020)
 
그(에두아르)는 프랑스 사람이다. 그는 음식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당근 1kg을 맛없게 삶는 사람이다. 그는 책벌레다. 엄청나다. 고전은 물론이고 방대한 독서근육을 확인했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 1944년생)는 《아사히신문》이 ‘희대의 독서가’로 부르는 일본의 독서고수다. 그는 문화, 예술, 생명철학, 시스템 공학 등 다방면의 사색을 정보문화에 응용한 ‘편집공학’ 개념을 확립했다. 그는 2000년 2월부터 2004년 7월까지 1,000일 동안 1,000권의 책을 읽고 감상문을 올리는(千夜千冊)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24년 6월 현재 1,849권에 대한 서평을 게재했다.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책 읽는 힘을 기르기 위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꼭 해야 하는 것은, 읽은 것을 정리하고 글로 써 보고 여러 사람 앞에서든 단 한 사람 앞에서든 자신이 읽은 바를 말해 보는 것이다.
『책 읽기의 끝과 시작』(강유원, 라티오, 2020)
 
일본 독서의 신 마쓰오카 세이고의 사이트에 올라온 책들은 하나같이 쉬운 책들이 아니다. 그런 높은 난도의 책을 매일 한 권을 읽고 감상평을 쓴다. 축구에서 메시가 신이듯이 마쓰오카 세이고는 독서계의 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인간계가 아닌 천상계다. 하루에도 읽기 힘든 고난도의 책을 후기까지 쓰는 건 신의 경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책에 집중하며 살았을까. 책을 읽는 근력을 얼마나 독하게 훈련을 했을까.
 
서울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는 2024년 4월 43년간의 목회생활에서 은퇴했다. 그가 은퇴하며 삶을 되돌아본 『고백의 언어들』(김기석, 복있는 사람, 2024)을 냈다. 하루 3시간 정도 책을 읽고 연간 150여 권을 읽는다. 그는 “성서를 바로 보기 위해서라도 인문학 공부는 철저히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동양고전까지 아우르는 책 읽기의 넓이와 깊이를 체험한다. 그의 설교가 일반 목회자와 다르게 깊이와 교양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2023년도 국민독서실태조사 자료에 의하면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2013년에 10명 중 3명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에 비하면 절반이나 줄었다. 성인 연간 독서량은 종이책 1.7권, 전자책 1.9권으로 2019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독서 장애요인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가 33%로 가장 높았다. 1년 동안 성인이 구입한 종이책 구입비용은 1만 8천원이다.
 
칸트는 글쓰기와 독서 외에 오직 두 가지에만 관심을 두었는데, 바로 산책의 절대적 필요성과 먹는 것이었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프레데리크 그로, 책세상, 2014)
 
칸트는 독서 외에 산책과 먹는 것, 세 가지에 관심을 두었다. 프랑스 책벌레인 에두아르는 책을 읽는 것 외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점심을 먹고, 악양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이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좋은 원두로 만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곁에 두고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알아가는 정보들이 재미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김훈 작가의 『개』라는 소설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동화처럼 읽힌다. 큰 주제를 무겁고 어둡게 쓰는 작가로 고착되어 있었는데 모처럼 가벼운 동화책을 읽는 느낌이다. 개의 눈으로 인간세상을 관찰하고 서술한 1인칭 ‘개’ 시점 가벼운 동화였다.

소소한 책읽기에 적합한 악양의 카페, 정서리

내가 점심시간 책 읽는 곳으로 소일하는 카페의 남편도 독서광이라고 한다. 그 역시 독서 외 먹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의 아내가 만들어주는 모든 것이 맛있다고 한다. 나 역시 음식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은 동물이면 생존해야 할 최소한의 에너지원일 뿐이다. 무슨 음식을 먹을 것이냐 보다는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나이들수록 요리하는 시간은 아깝다. 읽는 시간은 즐겁다. 요리는 일절 하지 않는다. 좋은 쌀에 콩과 현미 등 뇌에 좋은 영양소를 넣은 밥만 한다. 음식쓰레기는 전혀 만들지 않는다.

카페 통창으로 보이는 광양 백운산의 운무가 마음을 정화한다

프랑스 책벌레인 에두아르는 지금 현재 이혼했다. 이혼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처럼 읽힌다. 그의 아내는 4개 국어를 하는 한국여자다. 일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쿨한 그녀는 지금 프랑스에서 서울로 옮겼다. 프랑스에 있는 에두아르는 여전히 책을 좋아할 것이다. 프랑스인답게 쿨하게 지내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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