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노인(月下老人)은 운명의 붉은 실로 두 남녀 간의 인연을 맺어준다는 중국설화의 노인으로 도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한다. 언젠가 맺어질 남녀는 월하노인이 운명의 붉은 실로 서로의 발목을 묶는다. 한국에선 신랑 측에서 청실홍실로 보를 싸서 신부집에 보내는 문화가 남아있다. 일본은 새끼손가락에 붉은 실로 맺어준다.
대만 타이난의 대표서원인 대천후궁(大天后宮)은 민간신앙인 마조(媽祖)를 숭앙하고 있는 사원이다. 사원의 뒤편에 월하노인이 놓인 장소는 연애 중이거나 커플이 되고 싶은 청춘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가 있는 3층까지 오르는 벽면에는 결혼하게 되어 감사하다는 카드와 커플사진들이 가득 붙어있다. 서양의 개구쟁이처럼 생긴 큐피드가 화살을 심장에 날리는 것과는 달리 월하노인이 발목에 붉은 실을 묶는 것이 더욱 애틋한 감정이 묻어 나온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도시 남고생과 시골 여고생의 반복되는 꿈을 통해 만나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우연히 도쿄 지하철 역에서 내릴 때 마주친 여고생은 붉은색 머리끈을 남고생에게 전해주며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다. 마지막 혜성이 마을에 떨어지는 장면에서 소중했던 여고생의 이름을 기억하려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었느냐고... 그로부터 7년이 흐른 후, 성인이 된 남녀는 전철 철로를 사이에 두고 눈이 마주치며 서로가 찾았던 상대임을 직감한다. 두 남녀가 계단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마주 본 채 동시에 말을 한다.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으로 추정한다.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가정하면, 1월 1일 우주가 태어났다. 3월 15일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Milky Way Galaxy)가 만들어졌다. 12월 29일 운석이 지구에 충돌해 지배종이었던 공룡이 멸망했다. 12월 31일 오후 1시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다.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 산업혁명과 아폴로 달착륙이 있었다. 인류가 지구의 지배종으로 등장한 건 1초 정도다.
우주의 크기는 약 930억 광년이다. 빛이 930억 년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는 나선형 구조다. 지름은 10만 광년이고, 나이는 약 132억 년이다. 우주에서 우리 은하 같은 우주는 관측 가능한 범위에서 약 1,700억 개 이상으로 추정한다. 태양계는 약 46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 태양은 우리 은하를 1바퀴 공전하는데 약 2.2~2.5억 광년이 걸린다(태양이 공전하는 모습.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esLkeFsYqag). 태양의 공전 속도는 시속 78만km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속도인 10만km의 약 8배 속도로 우리 은하주위를 날아가고 있다.
태양은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약 2만 5천 광년 떨어져 있는 변두리 항성이다. 태양의 수명은 100억 년으로 추정한다. 앞으로 약 55억 년 후에는 태양은 중심부의 핵융합 연료가 소진되면서 부풀어 올라 지구를 삼켜,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는 빛의 속도로 250만 년 거리에 있다. 당분간 인간의 과학기술로는 접근 불가능한 거리다.
2023년 한국인의 평균기대수명은 83.5년이다. 우주 달력에서 1초는 약 437년이다. 찰나(刹那)는 1/75(0.013초) 초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시간인 탄지(彈指)는 65찰나다. 우주 달력으로 인간의 수명을 환산하면 0.19초다. 영화 《어벤져스》에서 타노스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인류의 절반이 사라진 것처럼. 우주 나이에 비하면,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시간만큼도 살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의 크기와 시간 속에서 인연을 맺을 두 남녀가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두 존재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길 시간도 되지 않을 시간인 순간을, 함께 산다는 건 엄청난 기적보다도 크다. 만나는 것도 기적이지만 헤어진다 해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저 무게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순간이다. 그만큼 소중하다고 할 수도 있고, 무의미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의 시간으로 보자면, 영원히 살 것 같은 영겁의 시간 속에서 희로애락을 뼛속깊이 느낀다. 우주의 크기보다 더 크고 절실하게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이 수레바퀴처럼 하루하루 반복적으로 영원히 굴러갈 것 같은 시간이다. 인간의 눈에 삶은 우주의 무게보다도 무겁게 느껴진다. 지구에서 보는 달이 실제로는 나보다 훨씬 크지만 작게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기중심으로 판단한다.
도장 새기듯, 임의 마음에 나를 새기세요. 도장 새기듯, 임의 팔에 나를 새기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사랑의 시샘은 저승처럼 잔혹한 것,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 (아 8:6, 새번역)
영화 《너의 이름은》의 마지막 장면인 ‘너의 이름은’을 묻는 순간, 우주에서 가장 이루어지기 어려운 확률이 일어난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길 시간도 되지 않는 인간의 생애에서 기억될 만한 사건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이토록 소중하지만, 희로애락의 수레바퀴 속에서 사랑은 찢기고 너덜너덜 해진다.
사랑도 결국은 호르몬의 일시적인 과다분비 현상이다. 그럼에도 ‘너의 이름은’ 한 때 두 이성 간에는 온 우주의 경이로운 순간이었으리라. 한 땀 한 땀 도장 새기듯, 마음과 팔에 잊지 않도록 깊게 ‘너의 이름을’ 새기는 것. 찰나를 살지만 영원을 꿈꿨던 순간들을. 손가락 한 번 튕기기도 전에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너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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