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관통하며 살았던 루틴은 ‘일찍’이었다. 새벽에 일어나고, 일찍 학교 가고, 일찍 회사에 갔다. 젊어서는 늦게 자더라도 아침에는 피곤한 줄 몰랐다. 점점 나이가 쌓일수록 잠자는 시간이 10시 가까이 오면 몸이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12시에서 11시, 11에서 10시로 점점 빨라졌다. 회사는 계속 다녀도 되었는데도 일찍 관두었다.
지금은 10시만 가까워지면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잠자리도 돌아가기를 재촉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이 들수록 새벽잠이 없어져 차가운 새벽공기를 홀로 마시며 아침을 조용하게 맞이할 수 있다. 젊어서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 의지력이 필요했다면 나이 들수록 자연스럽게 새벽보다 먼저 깬다는 이점이 있다.
반드시 나가야 할 직장이 필요 없어진 지금도 일어나는 시간은 학생시절이나 직장인이었을 때나 변함없다. 고등학생때까진 교실에 일찍 들어갔고, 대학시절에는 도서관에 일찍 출입증을 들이밀었다(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뜻은 아니다). 직장생활에선 새벽에 출근해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출근시간에 누구보다 먼저 책상에 앉았다. 하는 일없이 늦게 앉아 이런저런 책도 읽고 정보도 찾아봤다(물론 선후배, 동료들과 끝없는 폭탄주에 다음날 오전까진 비몽사몽 했던 시절도 꽤나 있었다).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도 여전히 일찍 일어나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학생시절부터 회사원까지는 외부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다. 지금은 24시간 자유로운 시간이다. 스스로 루틴를 정해놓지 않으면 몸과 정신이 무너지기 쉽다. 학창시절과 직장인 기간은 낮시간은 무언가를 배우고, 정신노동을 파는 시간으로 채워졌었다.
지금은 학업시간과 근무하는 시간이 통으로 편집되어 빠져나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일찍 자는 시간 사이에 무언가 정해진 패턴으로 채워야 한다. 스트레스가 없어도 스트레스가 많아도 스트레스다. 적당한 외부 압력으로 몸과 마음에 긴장을 조성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새벽에는 일어나면 조깅을 한다. 달리기는 속력이 필요하지만 조깅은 즐거움으로 천천히 지면을 스치듯이 조금 빨리 걸어가듯 새벽공기를 흡입하고 내뱉는다. 산골생활에선 청정한 공기로 폐 깊숙이 찬 공기를 밀어 넣는다. 천천히 달리다 보면 길 위에는 방금까지 날다가 죽음을 맞이해 떨어져 죽은 매, 비가 온 후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 봄철이면 새끼 멧돼지가 나와 긴장하기도 했다. 어김없이 근처에는 어미 멧돼지가 쉭쉭 거리며 위협을 하면, 몇 발짝 뒤로 물러서 서로 위험을 피하기도 했다.
한 달 살이로 타 지역이나 해외에 가더라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러닝화 끈을 조이고 1시간가량 길 위를 달린다. 오전 1시간 정도는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등록한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내 몸에 심어둔다. 1시간 수업을 하면 3~4시간은 복습과 예습을 하고, 잠시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고 낯선 도시를 익숙한 도시가 되도록 산책한다. 길거리 음식을 먹어보고, 마트에서 장도 보고, 과일가게에서 필요한 것도 사서 돌아온다. 장소만 바뀔뿐 하루의 정해진 루틴을 유지하려 한다.
루틴이 쌓이면 몸은 저절로 습관을 형성한다. 습관(習慣)은 배우거나 익혀서 익숙한 행동이나 태도를 형성한다는 한자다. 습관은 한 번 형성되면 바꾸기가 무척 어렵다. 뇌는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에너지를 생명 보존에 대부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발을 디디면 뇌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차즘 적응이 되면 뇌는 다시금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다.
나이들수록 좋은 습관을 유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치매가 왔을 때 습관은 힘이 될 수도 있다. 술에 취해도 몸은 저절로 자동항해 장치에 의해 집으로 찾아간다. 치매가 왔을 때 반복적인 습관을 몸에 새겨놓았다면, 남에게 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글쓰는 습관은 쉽게 몸에 붙지 않는다. 억지로 앉아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13년째 사용 중인 크고 무거운 노트북을 얇고 가벼운 것으로 교체하면,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한두 번이 아니다. 카페나 도서관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정보를 찾고 글로 요약하고, 내 생각을 하나 둘 넣고 첨삭하는 습관은 가벼운 노트북을 사면 해결되려나. 아니면 낭비욕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후회하는 행동은 아닐까..... 여전히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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