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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불안을 견디는 법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5. 4. 1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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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영화 <가스등>에서 유래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상대방의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어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해리포터는 마법사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절대악인 볼드모트에 의해 부모는 살해되고, 이모인 머글의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다.

 

해리는 예전부터 또래에 비해 덩치도 작았고 깡말랐다.

 

해리는 머글의 전형적인 가정에서 가스라이팅 당하는 존재였다. 그들의 생각에 해리라는 이름은 형편없고 흔해 빠진 이름이었다. 이모 가족과 함께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첫 번째 규칙은 '질문해선 안된다'였다. 그들은 해리라는 존재가 없는 듯 집안에서 해리를 무시했다. 이모부는 더들리의 생일날 더들리의 파르페가 크지 않다고 성질의 부리자, 아들에게는 새것을 사주고 해리에게는 더들리 것을 준다.

 

해리는 이모 가족과 거의 10년을 함께 살았지만 비참한 10년이었다. 학교에서도 아무도 해리 곁에 오지 않았다. 이모부 아들인 더들리 패거리가 해리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의 기분을 거스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리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왕따 당하는 기나긴 시간이었다.

 

반전의 시작은 해리가 머무르고 있는 계단 밑 벽장으로 우편물이 오면서부터다. 결국 해그리드에 의해 해리의 존재가 밝혀진다.

 

“해리...... 너는 마법사야”

 

해리가 볼품없는 존재에서 마법사로 깨어나는 순간이다. 이모가 보기에 해리는 엄마와 같이 똑같이 이상하고, 똑같이..... 똑같이..... ‘비정상이고..... 해리의 엄마가 비정상이었기에 목숨을 잃었다고 규정한다. 해리는 자신이 마법사일 리가 없다며 무슨 실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살면서 인생의 굴곡을 건넌다. 외부 환경에 의해 자기가 규정되기도 한다. 인간이기에 사회적으로 어울리면서 자기의 존재가 정해진다.

 

성경의 인물인 야곱은 형인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는 등 이기적인 인물이었지만, 신을 만나고 그와 겨루어 이기면서 이스라엘 이란 이름을 얻는다. 해리 역시 자신의 존재가 마법사로 규정되면서 혼란을 겪지만 위대한 마법사의 길로 나아간다호그와트 입학식, 마법의 모자를 통해 각자의 존재는 다시금 규정된다. 기숙사가 배정되는 순간 그의 이름은 기숙사 이름이 상징하는 존재로 구별될 것이다.

불안을 견디는 법

지난해 미술관에서 작품 전시회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 보는 중에 물오리 한 마리가 너른 호수를 홀로 지나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작품 제목은 <불안을 견디는 법>이었다. 물오리 한 마리 뒤로 잔 물결을 일으키며 나아가는 모습이 외롭고 불안한 환경처럼 보이는데 제목은 의외였다. 전시관을 나오면서 작가에게 작품 제목에 대한 이유를 물어봤다.

 

작가는 수면 위에는 한 마리지만 수면 아래에 잠수한 물오리도 있기에 불안하지 않다는 해석이었다. 작품에는 한 마리 물오리만 외롭고 불안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동료가 있기에 든든하다. 혼자이지만 불안하지도 외롭지도 않은 그림이었다.

 

인생 역시 내 편이 없고 혼자임을 느낄 때가 많다. 외롭다고 느낄 때, 하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실패가 계속해서 이어질 때마다 좌절을 느낀다. 왜 나에게 이런 괴롭고 슬픈 일이 생기는 것인지, 미래에 대한 염려로 혼자서 불안을 느낀다.

 

너른 호수에 불안해 보이는 물오리지만, 보이지 않는 물속엔 나를 응원하는 존재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해리 역시 머글이란 일반인의 가정과 학교에서 가스라이팅 당한 기간이 10년이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덤블도어, 해그리드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리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삶이 불안하고 흔들려 내 편이 없다고 느끼는 것일 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나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람은 있다. 불안한 현재지만, 붙드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있기에 불안을 건널 수 있다. 불안은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머글의 가정에서 아무리 해리를 찬밥으로 취급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존재가 있음을 믿는다면, 불안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대로 주위에 해리 같은 피해당하는 존재가 있다면, 내가 덤블도어가 되거나 해그리드가 되어 해리 같은 동료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며 격려할 수 있다. 우리는 해리처럼 불안을 건너는 존재이면서, 다른 불안해 보이는 동료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지하고 격려하는 단단한 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J.K. 롤링.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 강동혁(역). 문학수첩,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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