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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8.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그날이 오면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5. 5. 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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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펴진다.
꼭 그래라이, 그녀가 말한다.
해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중3 동호의 모친이 하는 말이다. 결국 소년 동호는 돌아오지 못했다. 광주에 투입된 진압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군홧발, 몽둥이, 총, 대검으로 비무장 국민을 살해했다. 오월이면 푸르는 녹음이 더욱 짙어지는데 광주에는 검은 비가 내린다. 양심을 찌른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슬픔으로 울어댄다.
 
1980년 오월 광주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한 ‘상무충정작전’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인명살상을 예상한 ‘내란목적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 작전에 투입된 전투요원은 장교 276명, 사병 5,800여 명으로 도청 안에서 최후 항쟁을 벌인 시민군 200명 내외를 탱크와 자동화기로 진압했다. 이중 120여 명은 총을 잡아보지도 못한 청년과 고교생이었다.
 
5월 21일 새벽에 꿈을 꿨다. 문을 열어도 열어도 탈출할 수 없이 무한반복되었다. 문을 열어젖히면 또 다른 문이 나타날지라도 나아가야 했다. 오월 항쟁 정신은 87년 박종철 고문치사를 계기로 6.10 민주항쟁에 닿는다. 80년 5월 27일 화요일 새벽 3시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며 절규했던 시내 가두방송은 2024년 12월 3일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고 들불처럼 번져 계엄을 저지했다.
 
1592년 임진왜란시 충무공 이순신은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 또한 없었을 것이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난중일기에 남겼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전라도에서 일어섰다. 1929년 광주고보와 광주농고의 동맹휴업을 시작으로 일제를 향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80년 오월 광주는 해방구였다. 진압군이 일반 시민을 무차별 학살했을 때 모두가 일어섰고, 질서를 유지했다. 모두가 함께 밥을 먹었고, 내 것 네 것 없이 뭉쳤다. 진압군의 총격에 쓰러진 사람들에게 헌혈하기 위해 줄을 이었다.
 
2025년 5월 21일 오전, 광주 5.18 민주묘지를 걸었다. 헌혈하고 나오다 진압군의 총탄에 사망한 여학생의 묘에 걸음이 멈췄다. 1962년 3월 생인 그녀의 묘비 뒷면에는 “내가 곧 부활이고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여학생은 죽었지만 오월을 기억하는 모든 이의 가슴에는 살아있다.

1966년생 박창권의 묘. 80년 5월 21일에 숨졌다

1966년 5월 생인 박창권은 나와 동년배다. 80년 오월이면 중학교 2학년 생이었다.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은 폭도에 의해 일어난 소요사태라고 주위에서 말하는 걸 들은 기억이 난다. 부산에서 철없는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오월 광주에선 동년배가 군인에 의해 희생되었다. 보이지 않는 끈이 닿아 미안함이 폭포수처럼 올라온다. 저 깊은 곳에 숨어있던 부끄러움으로 온몸이 떨어댄다.

소년이 온다의 실제인물인 문재학의 묘

《소년이 온다》에서 중3 동호의 실제 인물인 문재학(1964년 생)의 묘 앞에 이른다. 그의 묘비 뒷면에는 “우리의 마음에 눈물을 주고 너의 가슴엔 한을 남긴 이승의 못다 서러운 인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다시 만나리”라고 새겨져 있다.

국립 5.18민주묘지 5.18추모관 영상 캡쳐

1980년 5월 21일 광주 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있었다.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군부에 맞선 민중봉기는 지난한 시기를 거쳤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민주화 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죽은 이는 말이 없지만 오월의 광주를 울리고 있다.
 
국가 권력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자리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마법사의 돌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은 ‘돌을 찾기는 하되, 사용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권력은 국민이 대통령이란 자리에 맡겨 놓은 거다. 대통령이란 사람에게 맡긴 게 아니다. 사람과 자리를 혼동할 때 자칫 자신이 사용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다간 볼드몰트처럼 절대악이 되고 마는 것을 전두환, 윤석열을 통해 목도했다.
 
국민 모두의 행복을 위해 마법의 돌을 사용해야 한다. 이념에 묻혀 행복이 뒷전으로 밀려나선 안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저지른 한겨울 밤의 꿈은 탄핵으로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2025년 6월 새로운 마법사의 돌을 찾는 여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초과이윤을 먹고 자란다. 초과이윤은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 1% 인구가 전 세계 자산의 40%를 소유 중이다. 상위 10%가 전 세계 부의 80%를 차지했다.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불평등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큰 재물에는 반드시 큰 불평등이 따른다. 큰 부자 한 명이 있으려면, 적어도 500명의 가난뱅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대적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부의 재분배’와 ‘국토균형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1980년 오월 광주가 계엄군의 위협 속에서도 대동세상이 되었던 것처럼, 동학농민혁명이 성공했던 지역에서 노비와 양반의 차별이 사라졌던 것처럼 ‘그날이 오면’ 좋겠다.

노찾사 2집에 수록된 그날이 오면 앨범

노찾사의 <그날이 오면> 가사처럼, 한 밤의 꿈이 아닌, 오랜 고통을 지난, 오월 광주의 눈물들이, 정의의 물결로 바다에 이르는, 그날이 오길 여전히 꿈꾼다.
 
 
* 참고문헌
1. 성찰과성장. 2024518. 1980527, 광주항쟁의 마지막 날.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
2.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안규남(역). 동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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