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곳곳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단어들을 발표한다. 2025년 한국 대학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를 꼽았다. 세상의 변화가 끊임없이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발표한 올해의 한자는 '곰(熊)'이다. 2025년 11월 기준 230명 이상이 사상했고, 13명은 사망하는 등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이곳 하동에도 심심치 않게 곰이 출몰한 목격담을 쉽게 이웃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 인식표가 없는 곰들이 자연상태에서 태어나 언제 사람이 피해를 입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주민들은 말하고 있을 정도다.

중국은 올해의 한자로 회복탄력성을 의미하는 '인(韌)'으로 선정했다.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세계경제 위기에도 중국 내수는 증가하는 등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의 단어는 '딥시크(DeepSeek)'로 AI분야에서 중국의 기술주권과 자신감을 표현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온라인 조회수를 높일 목적으로 분노나 짜증을 유발하는 콘텐츠인 ‘rate bait’를, 영국 콜린스 사전은 사용자가 자연어로 지시하면 AI가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드를 작성하는 방식인 ‘vibe coding’을 선정했다. 미국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AI로 대량 생산되는 저품질 디지털 콘텐츠를 의미하는 ‘slop’을 선정했다.
한국은 계엄 선포 이후 급격한 정치와 사회 변화 속에서 여전히 계엄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가 최악인 상황 속에서 총리를 지지하는 비율이 70%를 넘어섰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제전쟁 속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부의 불균형 확대, 청년층 취업 어려움, 고령화 등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단어는 AI 관련 단어들이다.
올해 구글 제미나이 3, 챗GPT의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 대규모 언어모델인 LLM, 사진을 캐릭터나 동영상으로 제작하는 앱 등 AI 관련 기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누구나 간단하게 앱을 통해 사진과 동영상을 실물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 수 있다. 프로그래밍을 전혀 하지 못해도 자연어 명령만으로 프로그래밍 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는 AI로 만든 영상과 오디오가 결합되어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2025년 12월 태국과 캄보디아는 국경 문제로 전쟁이 발발했다. AI기술을 이용해 실제상황을 왜곡하는 가짜 이미지를 제작했고, 이를 반박하는 실제 동영상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쟁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사람들의 적대감을 증폭시켜 자국의 권력층에 유리하게 선전, 선동을 했다. 같은 달 부산고법에선 챗GPT를 활용해 진료기록지와 진단서의 병명과 기간을 수정해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다 적발된 청년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2024년 2월에는 챗GPT로 다수 명의의 탄원서를 작성해 사문서 위조로 기소되기도 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rait bait’와 미국 메리엄-웹스터 사전이 선정한 ‘slop’에 해당하는 콘텐츠들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틱톡 등 소셜 플랫폼에 홍수처럼 넘쳐난다. 과거에는 이러한 정보들의 사실 여부를 검증된 소수의 미디어들이 걸러냈다면, 지금은 모든 사람이 펙트체크를 스스로 해야 한다. AI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처럼 그 불로 타인을 곤경에 빠뜨리는 도구로 할 것인지, 유익하게 할 것인지의 선택은 각 개인에게 주어졌다.

초창기 AI는 거짓말을 버젓이 사실처럼 말해 환각(Hallucination)을 인간이 재차 검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AI 버전이 향상되면서 개선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최종 검증은 사용자가 해야 한다. 인간도 사실인 줄 알면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인간 역시 사물을 왜곡해서 보는 맹점이 있다. 분명히 보이는데도 어느 지점에선 보이지 않게 된다. 사람은 알면서 거짓말을 하고, AI는 뇌의 베르니케 영역이 손상된 것처럼 표현은 유창하지만 내용은 입에 모래알이 씹히는 것처럼 불편할 때가 많다.
과학자들은 인간 뇌에는 약 860억 개의 신경세포인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부위인 시냅스가 100조 개 있다고 한다. 지구 밖에 무한한 우주가 있다면, 인간에겐 뇌라는 또 하나의 작은 우주가 있다. 평균 20살 인간의 뇌에 있는 백질을 모두 풀어놓으면 약 16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이는 지구 둘레를 네 바퀴 돌고도 남는다. 뇌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2016년 이세돌과 바둑을 두어 이겼던 알파고는 바둑판이 가로세로 19x19라는 경우의 수라는 범위 안에 서였다. 만약 다음날 20x20이란 새로운 규칙에서 바둑을 두었더라면 이세돌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인간 뇌는 새로운 규칙에 바로 적응력을 보이지만 AI는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상황대처가 본능적으로 이루어지지만 AI는 현재까지는 그렇지 못하다. 언젠가는 인간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데이터를 축적, 정리하는 건 AI가 이미 인간을 넘어섰다. 인간이 자연어로 프롬프터를 작성하면 AI 이미지는 현실과 분간하기 어려운 수준을 넘어 예술의 경지까지 창작하고 있다. 동영상과 오디오는 약간은 부족한 듯 보이지만 AI가 쏟아내는 검증되지 않는 텍스트들이 이들과 결합해 소셜 플랫폼에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다.
카톡에선 출처도 없고, 검증되지 않는 텍스트들이 스팸처럼 쏟아져 들어오던 친구들을 차단했다. 소셜 플랫폼에선 차단하기 어렵다. 진실과 거짓의 줄타기를 교묘하게 엮어서 들어온다. 유튜브는 AI를 이용해 빠르게 텍스트로 변환해 요약된 것을 보고, 필요한 것만 건진다. 무익한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기존 미디어에서도 과거에는 사건 장면을 재현할 경우 단역배우들이 현장에서 조명, 음향, 분장 등 각종 스태프들과 오랜 시간 높은 제작비를 투입했었다. 지금은 AI로 간단하게 책상 위에서 명령만으로 상황에 적합한 가상 인물을 만들어 단시간에 해결하고 있다. 현재는 AI의 동영상 수준이 눈에 거슬리지만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되는 건 시간문제다.
신문 산업은 오래전에 고사 상태로 접어들었다. 지상파 방송 역시 2002년 광고매출이 약 2조 7천억 원에서 2024년 8천억 원이 되었다. 반토막을 넘어 70%나 감소했다.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언론이었지만 생존이 우선인 상황이다. 더욱 악화될 것은 자명하다.
어느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꼭지로 하고 있는 펙트체크는 이제 개인들의 몫이 되었다. AI에서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쓰레기를 걷어내고 제대로 된 정보를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2025년 각 국에서 선정한 올해의 단어들을 보면서, 각자의 인문적 역량이 더욱 중요한 시기가 되었음을 직감하지만,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감이 산골 새벽 악양 벌판을 가려버린 겨울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
| #114.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2025년 읽은 책들 (4) | 2025.12.28 |
|---|---|
| #112.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무연고 사망자 공고문 (1) | 2025.12.21 |
| #111.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겨울 소나무 (1) | 2025.12.18 |
| #110.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나는 나다(I am who I am) (1) | 2025.12.13 |
| #109.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시간의 주인으로 살기 (4) | 2025.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