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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문>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단어 : 염치, 부끄러움, 겸손

독서

by 풀꽃처럼 2021. 12. 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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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염치와 부끄러움을 압니다. 이 감정들은 남을 위하는 거창한 마음이 아닙니다. 그저 나 좋자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는지 주위를 살피는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떨칠 수 있는 감정입니다. 윤동주의 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은 시인 그 자신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대선 정국이 늘 그렇듯 정책은 안 보이고, 염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기사들로 넘쳐난다.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박탈감만 확인한다.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권력형 지도층(?)이 되기 위해선 염치와 부끄러움이란 단어는 사전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위로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나라의 국민을 팔아먹은 이완용은 자손대대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독립 운동가 후손들은 재산을 팔아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건만 초라한 삶을 살고 있다. 국가를 찾아준 주체는 초라하고, 국가를 말아 먹은 놈들은 여전히 잘 산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염치와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려 할까.

역사는 현재를 해석한다. 과거의 빅데이터를 보면서 현재를 반추한다. 악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심판하지 않기에 여전히 세상은 염치와 부끄러움이 설 자리가 없다. 염치와 부끄러움은 윤리 교과서에 글자로 존재한다.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한 관리가 되겠다고 결심한 맹사성은 항상 겸손한 태도로 임금을 섬기고 신료들을 대했으며, 온유한 태도로 아랫사람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였으며, 돌아갈 때 역시 공손하게 배웅하고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집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런 글들을 책에서만 볼 수 있다는게 슬프다. 책과 현실의 괴리다. 겸손, 염치, 부끄러움은 책에만 존재하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후손들에게 부끄러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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