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미완성> 이진관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
가수 이진관이 부른 <인생은 미완성>의 일부다. 편지를 쓰다가 틀리면 다시 쓰면 되지만, 인생이란 편지는 다시 쓸 수 없다. 지나간 날짜는 수정할 수 없다. 인생이란 조각도 손댄 부분은 고칠 수 없이 계속 새겨야 한다. 철필이든 연필이든 한번 쓴 편지와 끌이든 망치든 한번 새긴 조각은 고칠 수 없다. 오직 지금 쓰고, 지금 새겨야 하는 게 인생이다. 그러다가 주인이 호각을 불면 마무리도 못한 채 손을 놓는다. 학창시절 시험시간 끝나는 종이 울리면 급하게 답을 몇 개 옮겨 적을 시간도 없다.
새들은 멀쩡히 잘 날다가 어느 날 그냥 떨어져서 죽어요. 근데 날아다닐 때는 젊은 새나 나이 든 새나 체력적으로 별 차이가 없어요. 그렇게 끝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한순간에 떨어지는 거죠. 고래도 수영하고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숨을 거두고 가라앉거든요. 김병종, 최재천 《생명 칸타타》 (2023)중
알려진 사람의 미완성 작품으로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옥중에서 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다. 서문과 목차에 머무른 이 작품은 자신의 행위는 동양의 평화를 위한 것이며, 동북아의 정세에 대해 언급했으며 미완성인 채 사형당했다. 작가 최명희는 《혼불》집필 중 난소암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작가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은 4부작 중 3부작 집필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인상파 화가인 폴 세잔(Paul Cezane, 1839~1906)은 인물화를 그리다가 쓰러져 며칠 후 죽었다. 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의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착공한 지 144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뭐니뭐니 해도 작가의 미완성 작품은 아마도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피에타 3부작인 론다니니 피에타가 아닐까. 죽기 1주일 전까지 망치질을 했던 르네상스 시대 거장의 작품이다. 25세 이전 작품인 바티칸 피에타 첫 작품은 베드로 성당에 있다. 젊은 마리아의 무릎에 놓인 아들 예수의 작품은 정교함이 뛰어나다. 인생 후반의 피렌체 반디니 피에타는 두 번째로 예수의 시신을 내리는 모습을 자기로 표현한 신앙고백 작품이다. 죽기 직전까지 작업했다는 밀라노의 론다니니 피에타가 세 번째이자 최후의 미완성 작품이다. 젊은 날 피에타와 죽기 직전 피에타를 대비시켜 보면 죽기 직전 피에타는 선이 뭉개져 있지만 관찰자로 하여금 상상하는 공간이 있는 반면, 젊은 날의 피에타는 그저 멍하니 완벽한 피에타 앞에서 생각의 바늘이 들어갈 틈이 없다.
영화 인타임에서 사람의 수명이 팔뚝에 초단위까지 나타난다. 자신의 수명이 언제 끝날지 항상 알 수 있다. 남은 인생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 오늘 고생하면서까지 내일로 행복을 미룰까. 남은 재산을 아껴서 후손에게 물려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팔뚝에 남은 시간을 보며 마지막까지 행복을 위해 살다가 마무리를 좋게 하지 않을까. 아니면 어차피 죽을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대출을 받아 여행을 갈까(이건 잔여 수명시간과 재산의 정도에 따라 대출여부를 판단할테니 불가능할 것 같다). 죽는 시간을 알 수 있어 지금보다는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거나 행복을 미루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움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90:12)
시편 90편 저자인 모세의 기도처럼 남은 인생을 지혜롭게 살 수 있기를. 쓰다마는 편지처럼 새기다 마는 조각처럼 인생은 미완성일지라도. 부모가 부르면 놀다가도 귀가했던 어린시절처럼. 그렇게 하늘에서 부르면 누구나 그 자리에서 바로 손 놓고 ‘팟’하고 눈 빛이 꺼져버리는 미완성 작품.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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