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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Value Added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4. 11. 2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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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유자청을 뜨거운 물에 풀어 마신다. 도시라면 대량생산된 유자청 제품 중 성분과 지역을 읽어본 후 구입했을 것이다. 도시의 소비자는 완제품을 소비하기에 중간 부가가치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마지막 소비단계에서 화폐와 제품을 교환한다.

이웃집에서 받은 유자청, 길에서 주운 모과, 길가의 꽃 모두가 노란색이다.

시골은 그렇지 않다. 어제 저녁 이웃주민이 마루에 앉아 씻긴 유자를 자른 후 믹서기에 갈고 있었다. 모터가 시원치 않게 돌아가자 마침 지나가는 이웃에게 부탁해 성능이 좋은 믹서기를 빌린다. 교체된 믹서기는 유자를 빠르게 갈아낸다.
 
이웃이 유자청을 만드는 동안 그 집 밭에서 무를 뽑는 작업을 도왔다. 그리많지 않은 양이었다. 이웃집 부엌까지 짊어지고 옮겨놓았다. 저녁이 깊어졌고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에 열었더니 조금 전 유자청을 만들던 이웃집이다. 유자청을 완성했다며 그릇에 담아준다.
 
시골이 도시와의 차이점은 원재료에서 최종 소비자 단계까지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점이다. 그 기여한 노동력이 부지불식간에 음식이든 다른 형태든 내 손으로 돌아온다. 시골에는 언제나 일손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 여유시간을 노동으로 품앗이하면 돈이 없어도 먹거리를 얻을 수 있다.
 
먹거리도 이웃집에서 정성스럽게 수작업으로 만들었기에 안심하게 먹을 수 있다. 도시에서는 화폐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시골에선 노동력까지 생산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 주말에는 돼지감자를 캐는데 도와달라는 요청이 왔다. 작년 이맘때쯤에 돼지감자를 캐는 작업을 했는데 벌써 일 년이 지났다.
 
밭에서 캐낸 돼지감자를 썰어 건조기에 말려 몇 봉지를 받았다. 당뇨에도 좋은 돼지감자를 차로 한동안 끓여 먹었다. 하동이 야생차의 고장인지라 고양이 손인 내 도움으로 받아온 차는 집안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시골은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도시에선 심심하고 따분한 쳇바퀴 도는 삶이었다. 차가 움직이려면 휘발유가 필요하듯 도시에선 돈이 연료가 된다. 시골은 따분하지 않다. 몸을 움직여 이웃을 도우면 필요한 먹거리 획득에 운동효과는 덤이다. 이런 시골살이가 싫지 않지만, 산골은 겨울이 일찍 시작되어 추위와 친해지는 시기가 길어지는 연말이 다가왔다. 도시보다 7~8도 정도 낮다.
 
사위는 조용하고 하늘에 별은 수없이 걸려있다. 차갑고 짙은 추위가 공기를 빽빽하게 채운다. 아침저녁 먹이를 주는 길 고양이가 어김없이 방으로 들어온다. 녀석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쓰다듬는다. 시골의 겨울밤이 차분하게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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