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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뿌리뽑힌 삶(uprooted life)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4. 11. 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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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역시 '뿌리 뽑힌 삶',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뿌리 내리기’를 거부한 삶을 살았다고 본다. 이 '뿌리 뽑힌 삶'이란 이중의 의미가 있다. '육체적인 의미'와 '상징적인 의미'다. 예수는 육체적으로 고정된 거주지가 없는 떠도는 삶을 살았다. 또한 그의 가르침과 삶은 언제나 사회 중심부에 대한 비판과 주변부 사람들에 대한 연대와 환대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주변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일상적 삶을 함께 나눔으로써 '상징적 의미'로 '뿌리 내리기를 거부하는 삶'을 살았다. 나는 예수의 이러한 '뿌리 뽑힌 삶'과 그가 중심부와 주변부를 동시적으로 보는 '이중 보기 시선(double mode of seeing)', 그리고 주변부에 있는 이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강남순, 『철학자 예수』 중

 

예수뿐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 살았던 성경 인물들은 나그네로 뿌리 뽑힌 삶을 살았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로 고향과 친척을 떠나 어디로 향할지도 모른 채 나아갔다. 정든 고향에서 뿌리 뽑혀 철저히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살았다.

모세는 버려진 아기에서 이집트 왕자로 신분상승 후 살인을 저지르고 궁 밖으로 달아났다. 광야에서 결혼하고 자리 잡을 즈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삶터에서 뿌리 뽑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로 정처 없이 나아갔다.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뺏는 등 형제간의 갈등으로 험한 나그네의 길로 피해갔다.

 

요셉은 형제들의 질투로 가족 울타리에서 뽑힌 채 노예로 이집트로 팔려가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 예수 역시 머리 누일 거처도 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한다. 예수의 제자들도 세계 곳곳으로 뿌리를 뽑힌 채 나아갔다. 베드로는 로마, 마태는 태국과 에티오피아, 빌립은 터키, 마가는 인도, 다른 제자들도 이란, 영국 등으로 정처 없이 나아갔다. 뿌리내리지 못한 채 뿌리 뽑힌 삶으로 이 세상을 부유하며 살았다.

 

기독교의 틀을 확립하고 신약의 뼈대를 이룬 바울도 로마를 포함한 지중해 일대를 떠돌아다니며 뿌리 뽑힌 삶을 살았다. 성경의 뼈대를 이루는 인물의 공통점은 고향과 친족을 떠나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험난한 세월을 살았다. 기독인들은 세상을 사는 방식은 나그네의 삶이며, 영원한 본향을 꿈꾸며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도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두라고 말했다.

 

중동은 전통적으로 유목민의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살았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본향은 하늘나라이었기에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현대의 기독인들도 그러할지는 의문이다. 이 땅에서도 잘살고 편안하게 천국으로 갈려는 행복한 생각은 만인의 공통점이리라.

 

야곱, 요셉, 다윗처럼 살고 싶다고 하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겪은 고통, 고향을 떠나 뿌리 뽑혀 산 고독과 고난의 삶은 외면한다. 당장 아파트 시세, 주식 등 재산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줄기차게 나그네의 삶을 살라는 성경의 말씀에는 귀를 닫는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믿을 뿐 행동에는 둔감하다. 신앙과 삶의 간격은 적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통해 무지를 깨우쳤듯이 예수도 질문을 했다. 신학자 마틴 코펜하버는 복음서의 예수는 307번의 질문을 했고, 183번의 질문을 받았다. 답변한 것은 3번뿐이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도 하거니와 마틴 코펜하버를 빗대다면 예수는 질문이다.

 

질문은 생각하게 하고 사고의 근육을 단단하게 한다. 읽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읽는 과정을 통해 사고의 폭과 깊이는 확장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은 줄기차게 뿌리 뽑힌 삶을 요구하고, 읽는 우리들은 줄기차게 이 땅에 뿌리내리길 희망한다. 그 간격이 하늘에 계신 자와 땅에 발을 디딘 우리들의 메워지지 않을 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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