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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 탄소없는 의신마을 산골일기 : 존엄사

일기/산골일기(하동 의신마을)

by 풀꽃처럼 2024. 11. 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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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넥스트 도어》는 인간의 존엄사를 다룬 영화로 2024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틸다 스윈튼과 줄리앤 무어의 대화를 통해 삶과 우정, 죽음에 관한 생각을 되새기게 한 영화다. 말기암 환자가 행복추구권을 기초로 국가의 공권력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죽음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한다.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자료에 의하면 2021년 한국의 기대수명은 84.6세, 건강수명은 70.5세다. 기대수명은 평균수명을 말한다. 건강수명은 건강한 상태로 활동하는 연수다. 14년 정도는 질병으로 고생한다는 말이다.

 

남성의 건강수명은 68.1세, 여성은 72.5세로 남성이 여성보다 질병을 일찍 시작하고, 죽는다는 통계수치다. 건강수명이 높아져야 삶의 질도 그만큼 올라간다.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현대 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저주가 되기도 한다.

 

2008년 김할머니 사건을 통해 한국에서 존엄사 허용여부가 논쟁이 되었다. 2008년 2월 폐암 조직검사를 받던 중 갑자기 기관지 내에서 출혈이 일어나 식물인간 상태로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5% 미만이라는 견해를 받았다. 가족은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했고, 2009년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대법원은 식물인간 상태인 고령의 환자를 인공호흡기로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한다며 존엄사를 인정하였다.

 

2016년 1월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2018년 3월 28일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단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 죽음은 의료산업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주위에 60세를 넘고, 홀로 사는 사람 중에서는 멀리 여행을 떠날 경우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사람도 있다. 혹시 여행 중 불의의 사고로 죽었을 경우 지저분한 집안 꼴을 보이기 싫다고 한다. 다른 고령의 홀로 사는 사람은 늘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한다. 혹시 고독사 했을 경우 시신이 방치되어 이웃에 폐를 끼치기 싫어서이리라.

 

새벽에 조깅을 하다 보면 거리에 자연스럽게 죽어있는 동물을 가끔 본다. 외관상 온전한 몸상태인 물까치가 바닥에 엎드려 있기도, 송골매가 죽은 채 엎어져 있기도 했다. 동물은 죽는 순간까지 날다가 툭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 동백꽃이 화려한 채로 꽃을 떨구듯이 동물도 죽는 순간까지 움직인다.

 

사람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병원은 환자들로 늘 채워진다. 중환자실은 산소호흡기와 수많은 호스를 몸체 매단 채 연명하는 위급한 환자들이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미국의 일부주는 의사의 도움을 받는 조력 존엄사를 인정한다. 스위스와 벨기에는 고령이라는 이유로도 조력자살을 허용했다. 이들 국가들은 개인의 권리와 행복을 존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은 늦어도 2025년이면 65세 이상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영국의 일부지역은 초고령인구가 많아 노인 관련 비용이 지역 복지지출의 60%를 차지한다. 한국도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노인 관련 복지지출이 급격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죽을 수 있는 권리’인 존엄사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향후 초고령사회로 깊게 진행될수록 ‘죽어야 할 의무’까지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생명의 연장에 대해 국가가 제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초고령사회가 진행될수록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다. 웰빙(Well-being)이 현재의 행복이라면, 생을 행복하게 마감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해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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