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3(목)
16코스 15.8km. 광령 1리 사무소 ~ 항몽 유적지 ~ 수산봉 ~ 구엄리 돌염전 ~ 고내 포구
제주올레는 2007년 9월에 1코스를 개장한 이후 현재 26개 코스가 개설되어 있다. 올레의 의미는 '거릿길에서 대문까지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며, 발음상으로 '제주에 올레?'라는 의미도로 들린다. 제주올레는 최근 상업적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일부 생겨 운영하고 있지만,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지지 않고, 느리고 천천히 걷기에 주력하고 있다. 걱정이 되는 건 상업적 목적일 경우,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인해 올레길이 더욱 넓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2014년 처음 걸었을때는 올레길을 찾기가 어려웠고, 숲속에선 큰가지 달린 뿔의 사슴과 마주쳤을땐 서로 눈만 보며 놀라기도 했었다. 올레 표식이 잘 보이지 않아 길을 헤매기도 하는 등, 조심조심 주위를 관찰하며 걸었다. 올해는 올레길이 점점 대로처럼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직은 전반적으로 올레길이 사색의 길처럼 느껴지지만, 더 많이 올레길이 사람의 발길로 늘어난다면, 과거의 올레길의 낭만은 많이 퇴색되리라 생각한다.
모처럼 제주하늘이 제모습을 찾았다. 아침만 하더라도 짙은 구름이 지면 가까이 두껍게 내려 앉았는데, 지구가 힘차게 자전을 해서일까, 바람이 구름을 몰고 가자, 태양이 제모습으로 제주 하늘을, 잔뜩 시리도록 푸른 물감을 풀어 놓았다. 어느 때 오더다도 제주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바다와 하늘, 바람과 돌, 제철에 땅에서 일구어지는 식물들로 제주는 걷는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16코스를 걷다보니 옥수수밭이 코너를 돌때마다 자주 보인다. 벌써 옥수수 같은 형태를 띤 아기 옥수수가 수염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선 알들을 그 속에 만들고 있다. 각 코스마다 특징되는 작물과 풍경이, 자칫 지루하거나 피곤할 때쯤 '짠'하고 나타나선, 스마트폰 렌즈를 들이밀게 만든다.
육지의 돌담은 일정한 크기의 돌이나 기와, 흙, 짚 등을 쌓지만, 제주의 돌담은 순수하게 돌담으로만 쌓는다. 제주지역의 돌담은 세계적으로 독특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제주도 돌담을 '바람그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돌담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게 쌓아서 만든다. 제주의 거센 바람이 바람그물을 통해 빠져나가, 돌담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원리다.
이는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의 농사를 일구는 밭에선 많은 돌을 그대로 두어야 하는 원리와 같다. 한반도 같은 경우는 강수량이 충분히 공급되어 돌을 완전히 개간해야 하지만, 중동지역의 경우 강수량이 지극히 적기 때문에, 새벽에 돌에 맺힌 이슬이 땅에 스며들어 식물에 수분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각 나라 마다의 고유한 문화적 특징에 따라 유지되어 온 전통 방식이기에, 우리의 잣대로 그들의 밭에 돌이 많아 게으르다고 판단해선 안되는 이유다. 뇌는 말랑말랑해져야 뭐든 스폰지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고려때 진도를 빼앗긴 삼별초가 1271년 제주도에 들어와 여기에 자리를 잡았고, 1273년 여몽 연합군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 장소다. 항몽 유적지 기념관은 굳이 볼 필요는 없고, 토성을 복원만 흔적을 보는게 그마나 당시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제주올레 구간에 따라선 오름이나 봉우리를 올라야 할 때가 종종있다. 지친 다리에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지만, 정상에서 조망하는 경치는 그 수고로움을 넘어서는 전망을 제공하기도 한다. 오늘의 수산봉은 정상이 우거진 나무와 숲으로 인해, 손바닥 만한 하늘을 겨우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수산봉을 오르기 전 조망한 화창한 하늘에 선명한 한라산 정상을 볼 수 있어서 그마나 위안이 된다.
구엄리에 있는 돌염전을 복원한 모습이다. 서해안 염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형태다. 생산되는 소금의 양도 적어 그 가치는 더욱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곳은 파도가 높을 경우 파도가 배경이 되는 훌륭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인트다. 단, 그 파도에 젖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지만.
지구의 첫 모습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사람은 없고, 바다와 맞닿은 하늘, 생물은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 아무것도 없었을 것 같은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태초의 근원을 상상하는 즐거움이란.
지구의 태초에 바다와 하늘이 있었고, 그 사이에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씨앗을 퍼트려 지구를 살아 숨쉬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외롭게 저항하는 올레 표식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들고, 한껏 외로움을 만끽하게 한다.
제주의 맑은 바다는 하늘 거울이며, 하늘은 바다 거울이다. 서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낸다. 인간은 그저 그 찬란한 자연의 모습 앞에 겸허히 신의 작품앞에 감사할 뿐이다.
육지의 날씨는 여름 무더운 기온처럼 높다고 하지만, 제주는 그렇게 더운 줄 모르겠다. 조금 덥다는 느낌은 있지만, 해안가를 걸으면 바람의 세기에 겉옷을 입을 때도 있다. 단, 내륙의 올레길을 걸을때 강렬한 태양의 무게에 눌려, 오래된 나무그늘에 앉아 뜨거운 커피을 마시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카페는 보이지 않는다. 홍차는 티타임(tea time)이지만, 커피는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라 부른다. 홍차는 휴식용으로 마셨고, 커피는 각성제 효과가 있어, 시간을 부수어가며 일해야 하기에 그렇게 불렀지만, 지금은 홍차든 커피든 휴식과 여유를 갖는 타임으로 통일된 듯 하다. 오늘 무척이나 커피가 당긴다.
커피를 몸속에 넣고 죽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박영순, <커피 인문학 > 中
이슬람의 속담이었던 이 말은 커피가 무슬림이라면 마셔야 할 음료가 되었다. 커피는 이디오피아에서 시작해 전세계적인 기호식품이 되었다. 중국의 차 생산지인 운남지역도 차밭을 갈아 업고, 커피로 대체하고 있을 정도다. 커피 관련해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1773년 보스턴 차사건'을 들 수 있다. 영국이 식민지 였던 미국을 탄압하자, 미국인들은 원주민으로 위장해 보스턴 항에 정박중이던 배의 홍차를 바다에 버려, 미국 독립전쟁 불씨의 요인이 되었다. 이에 보스턴 시민들은 홍차 대신에 커피를 마셨는데, 강한 커피 맛을 줄이기 위해 물을 많이 타 엷게 마셨다. 우리가 지금 흔하게 마시는 '아메리카노 커피'의 기원설로 보기도 한다. 시중에는 커피관련 여러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커피의 역사부터 시작해 곳곳에 커피 관련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를 배치해 놓았다. 커피에 대한 기초 지식 차원에서 책꽂이에 꽂아두어도 무난한 책이라 일독을 권해 본다.
제주올레 16일째 7-1코스, 계획엔 없었지만 비 덕분에 엉뚱한 엉또폭포로 (0) | 2021.05.15 |
---|---|
제주올레 15일째 15-B 코스, 나이들수록 원색이 좋아져 다행인 줄 알았는데... (1) | 2021.05.14 |
제주올레 13일째 17코스,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이 생활 예술이다 (0) | 2021.05.12 |
제주올레 12일째 1코스, 밀밭에서 흔들리는 호기심을 보다 (0) | 2021.05.11 |
제주올레 11일째 1-1코스, 제주 탄생의 막내 우도 (3) | 2021.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