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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아가페 사랑을 위하여...

독서

by 풀꽃처럼 2021. 7. 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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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인 영역에서는 준다는 것은 부자임을 의미한다.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을 하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더 잘 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中

젊은 시절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삶의 기준을 존재에 뿌리내리기 위해 살았다. 솔로몬의 화려한 옷 보다는 들에 핀 꽃들이 더 좋았다는 것처럼 마음의 폭을 넓히려 했는데,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의 기술>에서도 부자의 기준을 많이 가진 것이 아닌, 많이 주는 자로 정의한다. 세상의 부자는 남에게 있는 것조차 뺏고, 주는데 인색해야 가능하다.

우리의 이웃은 친절을 베푸는 자, 주는 자다. 소유물을 더 가질려기 보다는 주는 자여야 한다. 더 가질려는 사람은 가난한 자다. 가난하기에 더 가질려 한다. 가난하다는 건 인간 욕망이 절제하지 못하는 거다.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오히려 많이 주는 자가 행복하다 (행20:35).

세상의 기준은 존재 보다는 소유를 욕망한다. 세상의 기준은 주기 보다는 더 가지기를 욕망한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소비를 자극하는 소비 자본주의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는 '광고'로 가득찼다. SNS, TV, 버스, 영화관, 백화점 등 어디를 둘러봐도 소비하라고 외친다. 존재하기 위해선 미니멀 라이프로 돌아가야 하고, 마음의 부자가 될려면 가진 것을 주는 삶이어야 한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더 가질려 하다가 낙원에서 쫓겨났다. 내 몸에 지방을 덜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마음에 낀 지방도 털어야 한다. 나이들수록 덜어내고 주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 세상을 떠나기 위해선 몸과 마음을 깃털처럼 가볍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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